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사회 악몽의 전쟁 6.25 회고록
악몽의 전쟁, 6·25 회고 (3)홍천 말고개 전투의 11 용사-1[우리 지역 그 때, 거기, 그 사람]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2.09.10|(0호)

S자형으로 구부러진 말고개 밑의 좁은 길가에는 11명의 육탄용사들이 가슴에 수류탄을 안고 사살당한 시체처럼 여기저기 엎어져 있었다.

6.25 전쟁이 발발한 지 62년이 흘렀다. 전쟁에 참여했던 당시의 젊은이들은 지금 80세를 훌쩍 넘었고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6.25전쟁 그리고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들에 대해 다양한 잣대가 존재한다. 이 회고록은 6.25전쟁에 대한 역사적 연구가 아니다. 6.25를 경험한 한 개인이 전하는 전쟁기간 삶의 궤적이다. 횡성이라는 이름아래 함께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횡성인들의 삶을 통해 오늘 그리고 내일의 횡성을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김명수 <6.25참전유공자회 횡성군 지회장>



 7연대 제2대대가 원창고개에서 인민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한편 제2연대는 27일 아침 한계리와 북창을 잇는 큰말고개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한 다음 제19연대의 지원을 받아 29일 밤까지 북한군 제7사단 진출을 저지하였다.

 27일 아침 제19연대장 민병권 중령은 홍천을 향해 철수하라는 사단장의 작전 명령을 받았다. 연대장 민병권 중령은 연대 작전주임 박주근 소령에게 선발대로 내려가서 지형을 정찰하여 남하하는 적을 분쇄할 수 있는 좋은 지점을 설정토록 하고 행군 서열을 정하여 27일 오후 6시30분 홍천 군민학교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작전주임 박소령은 “사단작전 명령에 지적된 지역은 방어선을 펼만한 곳이 못되고 성산리 북쪽 큰말고개야말로 지형상 유리한 방어진지가 될 만합니다. 이 곳은 차량2대가 서로 비켜 갈 수 없을 정도로 좁은 도로에다 좌우는 급경사의 산으로, 우측은 절벽이고 길은 S자형으로 구불구불 고갯길이 나 있는 곳”이라고 정찰결과를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연대장은 지형을 이용해 적 탱크를 쳐부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천하무적의 북한군 탱크를 폭파시켜 아군의 사기를 진작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전통 야전군 지휘관인 연대장 민병헌 중령은 출발명령을 기다리는 대대 앞으로 나섰다.
“적의 전차 위력은 모두가 봐서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춘천에서 피눈물을 삼키고 철수하게 된 것도 그들의 전차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 원한을 씻어야 한다. 57㎜ 대전차포로 무력화시켜야한다. 안된다면 육탄 공격으로 부딪쳐 깨부술 수밖에 없다. 우리 앞에 다가오는 적의 전차를 보기 좋게 때려 부술 용사가 없는가. 있다면 앞으로 나와!”

 연대장의 비장한 말에 억수처럼 쏟아지는 비를 맞고 서있던 병사들이 하나둘 앞으로 나왔다. 세어보니 모두 30명이나 되었다. 감격한 연대장이 떨린 목소리로 “고맙다. 귀관들은 애정 충정을 본받을 용사들이다. 연대장으로서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하지만 30명까지는 필요치 않다. 자,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대로 해당사항이 있는 병사는 열에서 뒤로 3보 물러나라.” 연대장의 말에 잠시 침묵의 순간이 흘렸다. 쏟아지는 빗소리가 들릴 뿐 너무나도 조용했다.

 연대장은 30명 중에서 독자, 기혼자, 막 결혼한 장병, 노부모를 모시는 병사들을 억지로 제외시키고 11명을 선발하였다. 그리고 11명 중 전차에 대한 지식이 있는 임택규 이등중사를 시켜서 자원한 용사들에게 전차의 약점이 무엇이며 손쉽게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고 시범을 보이도록 하였다.

 임택규 이등중사는 “적 탱크의 취약부분은 바퀴에 있다. 바퀴쇠줄을 향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박격포로 때려 맞추면 줄이 끊어져 탱크가 정지하게 된다. 이때 전차위로 뛰어 오르면서 전차 꼭대기에 달려있는 손잡이를 당겨 뚜껑을 열어 수류탄을 집어넣고 재빨리 탱크에서 뛰어내려 대피하라. 탱크 안에서 수류탄만 폭발하면 탱크는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 동작만 빠르면 충분히 살아날 수 있다.”며 설명하고 용사들을 격려했다. 

 육탄 11용사는 각자 수류탄 2발, 안전핀을 뺀 박격포 81㎜탄 1개씩을 받아들고 연대수색대장 박준수 중위의 인솔아래 출발했다. “살아서 모두 만나기를 하늘에 빌겠다.” 떠나는 그들에게 연대장은 말했다. 곧이어 제3대대가 선두로 말고개로 향했다. 19연대는 말고개를 중심으로 동쪽 산기슭에 방어 배치를 끝냈다. 육탄11명의 용사들은 S자로 구불거리는 고갯길이 잘 내려다 보이는 곳에 양쪽 10m-20m의 간격을 두고 배치를 끝냈다.

 그런데 도로 양편에 몸을 숨길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배수로가 훤히 보이기 때문이었다.  연대 지휘 본부는 대원들이 전부 전투 중 사살당한 것처럼 양쪽 도랑에 엎어져 있기로 결정했다. 대원들은 모두 죽은 척 엎드려져 있었다.

 6월 28일 아침 9시가 지나자 철정리 한계마을 쪽에서 10대의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이 병력을 가득태운 수십대의 트럭을 몰고 진군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계 마을은 대접처럼 약간 들어간 분지형태의 마을이어서 제2연대 연대장 함병선 중령은 진작부터 마을 복판을 향해 화망을 철저하게 구성해 놓고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소총과 중화기 박격포의 제물이 되도록 진지를 구축하고 기다린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윽고 전차 10여대를 앞세우고 병력을 실은 트럭이 마을 한 복판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병력이 마을을 절반쯤 통과할 무렵에 연대장 함병선 중령은 사격을 명령했다. 집중 포화가 쏟아지자 마을 안은 유황불이 끓는 가마솥으로 변하여 미처 트럭에서 내리지 못한 인민군은 무수히 죽어갔다. 살아남은 인민군은 트럭에서 뛰어내려 황급히 공격 대형을 펼치며 응전해 왔다. 북한군 보병은 더 이상 전진을 하지 못하고 죽어가며 응사를 하는데 10여대의 탱크는 그대로 전진하며 말고개로 향했다.

 육탄 11용사가 탱크를 맨몸으로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2연대의 선제공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탱크를 앞세우고 뒤따라가던 적 보병의 발목을 묶어 탱크만 말고개로 올려보냈기 때문이었다. 적의 전차11대가 캐터필더 바퀴 소리도 요란하게 고갯 마루로 올라가고 있을 때 아군 대전차포 중대 이훈 중위의 지시에 따라 57㎜ 대전차의 제1발과 제2발이 탱크에 명중했다. 그러나 적 탱크는 가벼운 충격을 받았을 뿐 계속해서 고개 쪽으로 올라갔다.

 애당초 대전차포는 탱크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모든 장병들의 얼굴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한편 S자형으로 구부러진 말고개 밑의 좁은 길가에는 11명의 육탄용사들이 가슴에 수류탄을 안고 사살당한 시체처럼 여기저기 엎어져 있었다. 대낮인 데다가 은폐물도 없어 길가의 얕은 배수로에 죽은 척하고 엎드려 있으니 완전히 노출되어 위험하기 이를데 없었다. 용사들의 목숨은 적의 전차에 맡긴 상태였다. 드디어 전차의 광음이 땅을 진동하면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 한국 전쟁 당시 국군이 보유한 57mm 대전차포의 모습. 적의 전차에 명중을 시켜도 타격을 줄 수 없었던 탓에 뒤에는 육탄돌격을 지원하는 정도로 쓰였다.

횡성희망신문  yongy63@naver.com

<저작권자 © 횡성희망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스포츠
여백
신문사소개ㆍ기사제보ㆍ광고문의ㆍ불편신고ㆍ개인정보취급방침ㆍ청소년보호정책ㆍ이메일무단수집거부
(25234)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앞들서2로 23(2층)  |  전화 : 033)342-1507  |  팩스 : 033)343-1507
등록번호 : 강원아00116(2012.02.08)  |  발행인 : 합자회사 횡성희망신문 조만회  |  편집인 : 조만회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용희
계좌 : 합자회사 횡성희망신문 농협 351-0755-0672-03  |  이메일 : hschamhope@naver.com
Copyright © 2026 횡성희망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