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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딸과 4학년 아들, 학교 다니는 일이 공부보다 더 어려워[생물학자 이강운 박사의 생태이야기] (12)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6.06.29|(107호)
1997년 당시 살던 집

왕복 6km. 너무 멀고 힘들어 아이들은 땅만 보고 걷는다 했다. 차를 태워 학교에 보내고 수업이 끝날 무렵 데려왔다. 아이들 등하교시키느라 시간이 토막 나 아무 일도 못했다. 자전거를 사 주고 통학을 시켰다. "이런데서 어떻게 사냐"던 위험한 길.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가던 딸아이가 길에서 미끄러져 자전거와 함께 벼랑으로...

 20여 년 전 ‘지금껏 잘하던 일’을 과감히 포기하고 ‘앞으로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하대리로 내려왔을 때, 딸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아들은 4학년이었다. 시골로 내려오면서 가장 큰 걱정거리는 역시 아이들 교육 문제였다. 그렇다고 교육을 위해 아이들을 서울에 떼어 놓는 이산가족은 최악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일단 내려와 부딪혀보기로 했다. 산으로 들로 데리고 다니면서 생태 감수성을 키웠고 ‘최소한 부모들만큼은 하겠지’ 라고 내심 아이들을 믿으면서 1997년 여름 전교생 12명뿐인 금성초등학교에 전학 시켰다.

금성분교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막상 시골로 내려와 보니 공부가 문제가 아니라 학교 다니는 일이 어려운 일이었다. 왕복 6km에 달하는 길은 너무 멀고 힘들어 아이들은 땅만 보고 걷는다 했다. 쨍쨍한 햇빛에 얼굴이 시뻘겋게 익고 땀에 쩔어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내는 서둘러 옷을 벗기고 임시로 만든 수돗가에서 울면서 등목을 시킨다. ‘아이들만은 외가 집이나 할머니 댁에 보내 이 굴레에서 벗어나 편안히 학교 다니게 하자고’ ‘아이들이 나중에 다 컸을 때 원망은 어떻게든 고스란히 다 받겠지만 그것보다도 도저히 마음이 아파서 이곳에서는 학교에 못 보내겠다고’ 도시에서 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느꼈던 일상이 무너지면서 일탈로 인한 상실감을 어쩌지 못하는 것 같았고 순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시골 생활의 벽 앞에서 안절부절 못했다. 서울에 살 때도 아이들에게 공부만을 위한 학원은 한 군데도 보낸 적 없었고, 비상식적인 교육 방법에 대해 ‘나’라도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친구들과 잘 어울려 노는 것만을 가르쳤는데, 막상 시골로 내려와 통학의 어려움을 접하니 너무 가혹한 현실이어서 가슴이 아프고 어쩔 수 없어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내에게 정말 미안했지만 그렇다고 아내의 뜻대로 가족이 찢어져 살 수는 없었다. 

금성분교 학예회 이병직, 홍석분 선생님과 함께

 힘내라는 말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이제 10살, 12살 어린 아이들에게 갑천의, 하대리의, 강원도의, 대한민국의 시골 모든 아이들도 이렇게 사니 너희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해서 걸어서 통학하는 대신에 차로 등하교를 시키기로 약속하면서 아내를 진정시켰다. 차를 태워 학교에 보내고 수업이 끝날 무렵 데려왔다. 시간에 구애 안 받고 특별히 할 일이 없어 보였지만 하루 몸 빼기가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고 아이들 등하교시키느라 시간이 토막 나 아무 일도 못했다. 위험했지만 대안으로 자전거를 사 주고 통학을 시켰다. 지금도 급경사에 길이 구불구불하지만 20년 전에는 말도 못했다. 말구리는 거의 60도 경사에 급 커브였고 붉은재는 경사도 경사지만 300m이상 죽 올라가야만 하는 지루한 길이었다. 비 오는 날이면 고개는 진흙으로 뒤범벅이 돼 신발에 흙이 묻어 무거워 걷지 못했고 미끄러져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인규 전 갑천 면장이나 조태진 전 군수께서 차타고 올라오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걸어오면서 "이런데서 어떻게 사냐"고 나를 힐난하던 바로 그 길이었다.

그 당시에는 동네의 길뿐만 아니라 금성 분교까지 가는 모든 길이 비포장이어서 산악자전거 타고 통학을 하였던 셈이다. 위험한 길이었기 때문에 아침에 등교하기 전 나에게 ‘안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수경례를 하고 출발했다. 길 끝나는 곳까지, 눈에서 안 보일 때까지 아이들 안전을 확인 한 후에 일을 시작하곤 했는데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가던 딸아이가 길에서 미끄러져 자전거와 함께 벼랑으로 떨어지는 게 아닌가! 밭과 논을 가로지르며 나는 달려갔고 아내는 엉엉 울며 어떻게 하냐고 발을 동동 굴렀다. 다행히 벼랑 끝이 논이어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이마 한 가운데 흉터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너무나 치명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잃은 것 같고. 정신적으로 부담이 너무 컸다. 자유롭고 편안할 서울 친구들 모습과 비교해 너무 외롭고 초라해 보이는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미안하다고. 학교 다니는 것도 힘들고 너무 친구가 없어 외로울까 걱정된다고.
아이들이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도 모든 애들이 친한 친구는 아니었고 지금은 전교생 모두와 친해서 오히려 좋다고. 걸어 다니면서 나비 보고 더우면 계곡에서 잠간 물놀이 하면서 물고기 잡는 게 재미있다고. 가장 어려운 환경에 놓이다보니 어른스러워지고 굉장히 강해진 것 같다. 기특한 놈들 오히려 나를 배려해주고 있다. 잘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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