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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개 소쟁기질 꾼, 신명순 씨를 만나고 오다특별기획 /‘소몰이 소리를 찾아서(5)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6.07.16|(108호)
photo by jaeyoung

“오죽하면
 처가살이를 했겠어요.
 그것도 삼 년 씩이나.
 옛말에도 겉보리 서 말만 있으면 처가살이 안 한다던데..“
“참으로 징한 세월이었죠
집도 절도 없이 마누라 하나보고 처가살이 할 때.“

“..”


그랬다.
청일면 초현리 ‘새우개’ 사는 소쟁기질꾼 신명순 씨의
지난하기만 한 삶은.
 

1941 년 생이니 우리 부르는 나이로 벌써 일흔 여섯.
적지 않은 나이다.

새우등을 닮은 고개가 있어서 마을이름이 ‘새우개’.
그 마을 옆 ‘수나지’ 골타데이에서
시 오리 청일초등학교를 다녔다.
새우고개를 넘어.
변또는 언감생심.
그냥 점심시간이면 학교 우물터에서 찬물 한 바가지로
한 끼 대신 했고.

근근덕신 초등학교 6 학년 겨우 마치고
부모님 따라 열 서 너 살부터 지게지고 논으로 밭으로 핀답했다.

 

내 땅이라곤 그때나 지금이나 한 꼬레이도 없는터라
남의 땅 부치면서 품 판돈으로 지겨운 보릿고개 넘었고.

워낙
소리 잘하고 농기계 다루는데 일가견이 있던 터라
그는 스무 살  무렵부터 소 쟁기질 배웠고,
제법 쇳소리 잘한다고 칭찬 들으며
초현리  선군(※ 소부리는 사람)이 됐다. 

빈한한 살림이라 내 소 있을 리 없어
동네 일소가 다 그의 부림소가 됐다.
제 아무리 성질 고약한 놈도 그가 고삐 바투 잡고
‘이러-’ 소리 냅다 지르면 그야말로 고양이 앞에 쥐.

젊은 나이에 선군으로 뽑혀 다니며
겨리소(※두마리 소)로 밭을 갈고, 논을 갈고, 논을 삶았다.

“선생님 그 때만 해도 선군 인기 참 좋았죠.
모심는 날도 선군은 일찌감치 불러 따순 이밥 고봉으로 담아 아침을 대접 했구유
골연도 참참이 한 갑씩 주머니에 찔러 줬구만요.
그뿐인가요
모심는 날도 선군네 논이 제일 먼저 순번이었죠.
지가 안소(안쪽에 위치한 소). 마라소(바깥 소) 번갈아 불러가며 소몰이 소리 한 꼭지 뽑아 올릴라치면
길 가던 사람들 모두 그 자리 서서 듣고 갔구먼요.
붉은댕기 두른 마을 처자들 담 벼락에 기대서 소리 들으며
발그레 얼굴 붉혔구요"

photo by jaeyoung 신명순씨 부부

쟁기질  잘하고 워낙 성실하기에  그는
중앙에서 고위 공직자 지내다 낙향한 왕씨네 집에서 일 하던 꽃 같은 처자와
결혼을 약속으로 처가살이를 시작했다.

그렇게 3년.

그리고 살림이라고 난 게 지금 사는 집터에 있던 오막살이 한 채.
장모님이 쌀 한 가마니를 주고 사 주신.

내 땅 한 꼬레이 없던 그는
남의 농사품이나 팔아서는 번한 날 보기 글렀다고 생각한 끝에
목상을 따라 전기톱 하나 울러 메고 전국의 산판을 핀답했다.
작은 목상으로.
산판이라는 게 글자 그대로 목숨 내 놓고 하는 험한 일이었다.
그래서 살판 죽을 판 부르기도 했고

그는 그렇게 일 년 열두 달 산을 탔고,
내 집 마련을 위해
네 명의 아이들 학비 마련을 위해
한 푼 두 푼 피같은 돈을 모았다.

마침내
오막살이집 헐고 처음으로 내 집을 지었고
그런 그의 성실함 하늘이 알았는지
그해 봄 산 바위 아래 갔다 놨던 빈 벌통마다 토종벌이 가득 들어
그 해 가을 꿀 판돈으로 집 짓는데 진 빚 말끔히 갚을 수 있었다.  

꿈만 같았다.
내 손으로 마련한 처음 마련한 집에서의 소싯적 삶은.

호사다마 라 했던가.
어느 해 봄.
둑새풀 범벅인 묵논을 종일 갈고 오니 오른쪽 다리가 영 펴지질 않았다.
그 놈의 연장 버섯날도 안 들어가는 둑새풀 일일이 발로 무리하게 끌어올린 게 화근이었다.
그래도 막걸리 기운으로 한 달 내내 무거운 다리 질질 끌며 쟁기질을 했다.
그 놈의 농사일이 뭔지.
봄이 끝나갈 무렵.
자고 일어나니 도저히 걸음을 옮길 수 가 없었다.
단 한 발자국 도.

부랴부랴 원주 기독교 병원으로.
의사 왈.
너무 무리를 해 골반뼈가 다 뒤틀리고 골절.
대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비는 집 한 채 값 웃도는 물경 3 천만 원.
그에게는 천문학적인 그만한 돈도 없었고, 행여 수술한다고 해도 그러고 나면  
올망졸망 네 명의 아이들 공부 중도메이 놀 게 뻔 한터수라
그는 두말없이 다리 질질 끌고 새우개 오는 택시를 탔다.
지금 당장 수술 안하면 10년 밖에 못 살 거라는 끔찍한 얘기 뇌리에 담은 채..  

그렇게 해서 그의 소 쟁기질은 막을 내렸다.
구성지고 청아한 소몰이 소리도.
그의 나이 쉰 다섯.

걷지 못한 지 참 오래 됐다고 한다.
전동 휠체어가 유일한 그의 이동 수단이다.

현재 부인이 남의 논 열 마지기, 밭 천 평 농사를 짓고 있다.
‘뚜르르’
전동 휠체어 타고 부인 일하는
전답에 나가 일하는 거 바라보는 게 요즘 그의 유일한 낙이다. 

그래도
25년 째 초현리 2 반 반장일을 보고 있다.

photo by jaeyoung

“참으로 그립네요
선생님 말씀 들으니.
튼실한 안소 녀석 고삐 바투 쥐고 마라소 슬슬 구슬르며
밭 뚜거지 넘나들고,
소싯적 마누라 젖통보다도 더 말캉한 논바닥 써래질 하며
불러대던 그 소몰이 소리.“

두 눈을 감고
‘겨리 소리’ 유장하게 불러 제키는 그의 두 눈에서는
어느새 이슬 같은 영롱한 눈물 그렁이고 있었다.

photo by jaeyoung 순둥이

<겨리소리>                           

이러 이러 이러!
이러저 어디여 어디 마라소 올라서 올라서
저 바우 우로 슬슬 밀고 돌아를 서라
이러허! 어디여 어디여 후우
저 뽕나무 안으로 밀고 돌아서 이러저!
이러 어디여라 마라 마마마 우겨서!
어디루 나가느냐 이거 우겨서라!
이러 어디여러 어치 후우-!
저 바우 안으로 밀구 돌아서
마라-마마 저 뽕나무에 뿔 다칠라
밀구 들어서 에- 이거 참!
어디여라 마라 마마 어디여 어디여라
에- 이렇게 왜 넘나들지를 말구 올라서

에-치 후우!
어치. 
  (소리 신명순)

글/사진: 정 재영(소설가. 횡성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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