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엉터리 경제성, 효율성 논리로 폐교 운운하니 가슴아파, 아이들의 개성대로 즐길 수 있는 작은 학교의 위대성 알아주었으면...아이들의 짐을 벗고 서식지 조성을 시작했다. 천천히.
숙제 때문에 다닌 학교가 아니라 소풍처럼 즐겁게 다닌 학교였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금성 분교는 천국이었고 막무가내로 아이들을 시골로 데려 온 나는 아내로부터 면죄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몇 년 후에는 성공적으로 자녀 교육을 한 모범 사례로 고액의 강연료를 받으며 특별 강연도 몇 차례 했다. 순전히 아이들과 금성 분교의 힘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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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성분교 도농교류에 참석한 학생들과 기념촬영 (지윤,혜윤,정인과 분교아이들)시골에 와서 학교를 다녀본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 나중에는 선발을 따로 해야 할 정도였다. |
최근에 금성 분교 폐교 이야기를 들었다. 20여 년 전 그 때도 폐교 이야기가 있었다. 전교생이 12명밖에 안 돼 아이들의 사회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는 엉터리 이유를 내세우며... 오히려 내 아이들은 이 곳 분교에 다니면서 모두와 친해질 수 있는 사회성을 길렀고, 무슨 일이든 스스로 척척 해내는 진짜 질 높은 교육을 받고 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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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운동회는 동네잔치다. 아이들에게 금성 분교는 천국이었고 막무가내로 아이들을 시골로 데려 온 나는 아내로부터 면죄부를 받았다. |
마침 학교운영위원장이기도 해서 대부분의 학부모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전면에 나서서 극렬하게 반대를 했다. ‘농어촌의 학교는 단순한 교육 기관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의 중요한 축이고 한 번 사라지면 학교는 다시 세우기 힘든 것 아니냐?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갑천 하대리, 상대리 동네를 아예 버리겠다는 뜻이니 절대 안 된다’. ‘만에 하나 폐교시킨다면 아이들을 순환 버스에 시달리게 하면서 갑천초등학교에 보내느니 차라리 서울로 전학을 시키겠다’는 강력한 항의를 했다.
없던 일로 됐지만 아직도 그 엉터리 경제성, 효율성 논리로 폐교를 운운하니 가슴이 아프다. 스마트폰 하나에 세상의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인공 지능 ‘알파고’는 이미 인간 영역을 넘어서는 시대다.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나 획일화 된 시스템을 주장하는 구시대의 교육을 주장할 일이 아니라 아이들의 개성대로 즐길 수 있는 작은 학교의 위대성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도농교류학습을 금성 분교에서 3년 정도 시행했다. 처음에는 주변 친구나 지인들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시골에 와서 학교를 다녀본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 나중에는 선발을 따로 해야 할 정도였다. 서울이나 큰 학교의 학생들은 미니학교보다 가진 게 많지만, 미니학교는 서울이나 큰 학교의 학생들보다 부족한 게 없어 행복할 수 있었다고 학부모들은 이야기 한다. 아주 작은 학교의 적은 학생들만이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때 금성 분교에 다녔던 아이들이 지금도 그 시절을 이야기하고 마치 외가 집처럼 푸근한 곳으로 생각하니 이 또한 분교의 덕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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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천중학교 생태 탐사반. 아들놈은 이때의 경험으로 대기업에 특채됐다. 미래 우리 아이들의 비교 판단능력이나 비판적 사고는 창조적인 미니 학교가 더 적합하다는 것을 알고 소규모학교를 폐교하지 않았으면 한다. |
내 아이들은 더 큰 덕을 봤다. 대학 논술 시험을 볼 때 분교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동아리 활동했던 사물놀이 이야기와 뚱딴지같은 소똥구리 이야기로 행복의 관점을 이야기 한 둘 째 아이가 특별한 생각 때문에 서울교대에 입학을 했다. 아들놈은 시골에 살면서 갑천 중학교 재학 시절(전교생 23명) 생태 탐사반에서 활동했던 이력과 곤충 사육한 남다른 경험 때문에 LG 생활건강에 특채되었다. 바야흐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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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조적이고 특별한 경험이나 지식을 요구하는 시대이고, 미래 우리 아이들의 비교 판단능력이나 비판적 사고는 창조적인 미니 학교가 더 적합하다. |
사실을 꼭 기억하고 횡성의, 갑천의 큰 장점이 될 수 있는 소규모 학교의 폐교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들에 대한 무거운 짐을 벗은 나는 본격적으로 곤충과 환경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서식지를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사람의 상처는 생겼다가 낫고, 또 아프다가 여물기도 하지만 환경은 한 번 망가지면 회복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회복되더라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므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삽질을 시작해야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나 과학적 근거 없이 수 십 조를 쏟아 붓고 만든 최대국책사업 4대강 사업이 돌이킬 수 없는 환경 재앙으로 돌아 와 앞으로 지금까지 쓴 돈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가야 하고, 돈을 쏟아 붓는다 할지라도 막히고 고인 강은 결코 회복할 수 없다는 현실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올해 끔찍이도 더운 여름을 보내면서 녹색으로 강 전체가 물들은 4대강, 똥물 수준이라고 일컫는 낙동강을 보면 그 당시의 두려움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내가 앞으로 만들어야 하는 환경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과연 환경과 곤충을 위해서 좋은 보금자리가 될지,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자문이나 해답을 얻을 수 없으므로 정해진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백지에 무언가를 그리는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물을 얻고 바람을 갈무리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개념을 갖고 너무 급격한 변화는 생물들이 감내하기 어려우므로 천천히 서식지 조성을 시작했다. 내 마음대로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정말 위험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자연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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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희망신문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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