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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연고도 없는 횡성...나무나 벌레는 나를 알고 이곳으로 모이고[생물학자 이강운 박사의 생태이야기] (15)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6.10.10|(113호)
애호랑나비. 한반도 희귀종이면서 일본의 멸종위기종. 한약재로 팔기위해 족도리풀을 캐어내자 족도리풀을 먹고사는 애호랑나비도 사라졌었다. 족도리풀을 구해 심자 거짓말처럼 애호랑나비가 다시 나타났다.

인간에게는 별 의미 없는, 심지어는 골치 덩어리인 잡초로 보일지 몰라도 벌레에게는 목숨 줄이다. 먹을 것을 충분히 골고루 심어주고 피난처를 만들어 최고의 서식처로 조성하니 많은 종류의 곤충들이 나타나고  먹이 사슬이 형성되면서 국립공원급의 생물다양성이 확보돼 온갖 곤충들의 낙원(Insectopia)이 됐다

자연을 믿고 내가 예측하고 생각했던 연구소, 마음속으로 꿈꿨던 연구소를 위해 환경을 조성하기 시작했지만 교과서 없이 하는 일이라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우리 네 식구 사는 곳은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집이라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연구소 전체 부지를 곤충의 ‘살 데’(서식지)로 만드는 일이 우선이었다.
 물과 햇빛은 특히 곤충들에게 필수적이므로 우선 물을 늘 쉽게 접할 수 있게 크고 작은 웅덩이와 연못을 만들고, 연구소 한 가운데는 양껏 햇빛이 들어올 수 있는 남향의 초지를 분지 형태로 만들어서 전체적인 환경을 조성했다. 갑천(甲川)이라더니 물은 맑고 많았다. 해발 400m 이상의 높은 지역임에도 마치 연구소 전체가 물구덩이 같아서 건드리기만 하면 물이 나왔다. 마을 사람들의 귀띔으로 오래 전부터 마을의 식수를 해결하던 큰 웅덩이를 정비하고, 연중 지표면으로 물이 흐르는 습지를 조그맣게 웅덩이를 만들어 서로 연결시켰다.

논에 멋있는 연못을 만들었다가 허가없이 연못을 팠다고 혼나고 내수면어업용도로 변경하기도 했다

연구소 앞에 있던 논을 조금 더 파 연못을 만들고 계곡의 물을 끌어들여 제법 멋있는 연못도 만들었다(당시 농정과 한문희 계장으로부터 허가 없이 연못을 팠다고 혼쭐이 나고 내수면 어업을 하는 용도로 변경했다). 물이 자연스럽게 고이고 서로 연결되니 물에 사는 하루살이, 날도래, 잠자리, 물방개 등 곤충들이 발생했고, 개구리들이 알을 낳기 시작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먹이사슬이 형성되니 물고기들이 생겨나고 그 물고기들을 잡아먹으려는 백로, 왜가리와 오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키보다 훨씬 컸던 풀을 베고 주변을 정리하니 풀 속에 숨겨져 있던 밭과 논이 나타나면서 하루 종일 해가 들어오는 자연스런 초지가 생겼다. 
 살 데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은 먹을 것, 피난처 그리고 짝짓기 할 짝이 있어야 한다. 곤충은 아주 작고 힘없는 존재로 늘 먹히는 신세라 이들을 위해서는 천적의 공격이나 자연의 압박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가 필요했다. 높은 생물다양성을 갖도록, 즉 많은 종류의 곤충들이 곳곳에 잘 숨어 살 수 있도록 아이들이 부모 몰래 숨고 싶어 하는 이층 다락방 같은 공간을 머리 속으로 그려가며, 직선적인 것 보다는 뱀 모양의 구불구불한 형태로 동네에 많던 꼬리조팝나무와 조팝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주었다. 폭도 넓은 곳, 좁은 곳을 섞어 자기에게 알맞은 곳을 선택해서 살 수 있도록 조성했다(학술적 용어로 생태적 지위(Ecological Niche)를 부여했다).
 벌레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막 대해도 괜찮을 것 같지만 사실 곤충은 입맛이 까다로워 먹는 식물만을 먹기 때문에 사육하기가 어려운 동물 중 하나다. 먹이가 되는 식물 냄새를 감각기가 있는 앞발로 만져보고 맞지 않으면 바로 다른 식물로 가 버리고, 더듬이로 맡아보고 아니다 싶으면 건드리지도 않는다. 인간에게는 별 의미 없는, 심지어는 골치 덩어리인 잡초로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벌레에게는 목숨 줄이다. 농작물을 지키려고 잡초라는 이름으로 다 없애버리면서 많은 곤충이 없어진 까닭이기도 하다.

10년에 걸쳐 연구소주변을 관찰하고 기록한 것을 바탕으로 2007년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소 주변에는 850여 종의 많은 식물이 있지만 곤충들에게 필요한 식물이 없으면 이식해 이곳의 곤충들과 어울리게 만들었다. 대표적인 식물이 팽나무로 20년 전 심었던 팽나무들은 마치 100년은 됨직한 아름드리 거목으로 성장해 많은 곤충의 먹이로 보금자리로 활용되고 있다. 팽나무 때문에 처음에는 없었던 홍점알락나비, 왕오색나비와 수노랑나비들이 떼지어 살고 있다. 옛날에 많았던 족도리풀이 다 없어졌는데 사연인즉 세신이라는 이름으로 한약상들이 한약 재료로 사가는 바람에 주민들이 온 동네의 세신을 깡그리 파헤쳐 팔았고 족도리풀을 먹고 사는 애호랑나비도 다 없어졌다. 애호랑나비는 한반도 희귀종이면서 일본의 멸종위기종으로 일본 학자들은 이 나비를 구하려 혈안이 돼있고 실제 거래 가격도 만만치 않다. 3,000본의 족도리풀을 구해 심자 거짓말처럼 애호랑나비가 발생해서 이 나비에 관한 많은 연구를 할 수 있었다.
먹을 것을 충분히 골고루 심어주고 피난처를 만들어 최고의 서식처로 조성하고 나니 처음엔 보이지 않던 많은 종류의 곤충들이 나타나고 그들을 먹으려는 먹이 사슬이 형성되면서 국립공원급의 생물다양성이 확보되어 온갖 곤충들의 낙원(Insectopia)이 됐다.
 10년에 걸쳐 연구소 주변의 생태계 변화를 관찰하고 정리하여, 연구소의 곤충 서식지가 환경적으로 더욱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통계로 수치화 하여 2007년 서울대 박사 논문을 썼고, 2014년부터 최근 3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처음 기록되는 미기록종(未記錄種) 7종류와 전 세계에서 처음 발견 된 신종(新種) 1종의 발굴 연구도 이루어졌다. 횡성 갑천의 다양성 덕분으로 이러한 연구들이 가능했다.
 추석 전 우연히 한규호 군수를 만났을 때 서울 가서 명절 쇠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이제는 아이들이 횡성으로 내려온다 답했다. 아무런 지연과 혈연, 학연도 없는 횡성이지만 나무나 벌레는 나를 알고 이곳으로 모이고, 명절에는 자식들이 내려오는 제 2의 고향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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