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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세생태학교의 가을풍경 . 발음도 어렵고 어색하다고 온 가족의 반대와 핀잔을 받은 ‘홀로세’는 인류가 경작과 유목 활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모든 생태계를 위협하기 시작한 시기다. 현재의 생태학적 위기를 알리고 자연과 생명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홀로세’ 라는 이름을 지었다. |
[생물학자 이강운 박사의 생태이야기] (16)
1998년 7월 17일 ‘홀로세생태학교’ 라는 이름으로 국내 최초로 생태학교 문을 열었다.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덜컥 언론에 보도되면서 교육생들이 밀려왔다. 호사다마(好事多魔). 첫 수료생을 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엄청난 양의 비가 퍼부었다. 제방이 끊어지고 계곡과 연못이 넘쳐 연구소 모든 공간이 파괴됐다. 망연자실 하늘만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나를 불렀다…
만산홍엽(滿山紅葉)! 연구소 주변 온 산이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이 들면서 밖에서 지내던 작고 귀여운 무당벌레와 노린재 같은 곤충들이 집으로 들어와 방을 차지하고, 습도 높은 목욕탕으로는 곱등이와 귀뚜라미가 제 집처럼 들어와 겨울나기 준비를 한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아프고 괴로워서 힘들었던 시절을 까마득하게 잊고, 물들어 가는 산하를 바라보며 가을을 느끼며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이다 싶다. 봄이 오면 불 켜듯 꽃이 피고 가을이면 때를 알아 나뭇잎들이 고운 옷으로 갈아입지만, 꽃이나 단풍에 마음을 내 줄만큼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흘린 땀이 얼마이며 흘린 눈물이 또 얼마인지 잘 모르지만 그 세월을 견뎌낸 고마운 스무 해를 보내고 나니 자연이 주는 화려한 색깔과 아련한 우수를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딸랑 딸랑 울리는 방울벌레의 소리, 자연이 내는 소리 중 가장 듣기 좋은 바로 이 소리. 귀도 즐겁다. 두 팔 벌려 반겨준 횡성 자연의 선물이다.
세 달 전 제헌절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의 공식적인 생일. 법적 기초가 될 헌법을 제정했던 제헌절의 뜻을 이어받아 환경에 관한 기본적 실천 방법을 구현할 대표적 사례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입산 후 1년이 지난 1998년 7월 17일 ‘홀로세생태학교’ 라는 이름으로 국내 최초로 생태학교 문을 열었다. 발음도 어렵고 어색하다고 온 가족의 반대와 핀잔을 받으며 홀로세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요즘은 한 번 들으면 기억할 수 있는 좋은 이름이라는 칭찬을 받고 있다. 홀로세란 지구의 지질학적 시간표로 볼 때 약 10,000년 전부터 현재까지를 말한다. 인류가 경작과 유목 활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모든 생태계를 위협하기 시작한 시기다. 현재의 생태학적 위기를 알리고 자연과 생명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홀로세’ 라는 이름을 지었다. 홀로 사는 새나, 절대 홀로 무엇을 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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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간 이어진 폭우로 제방이 끊기고 온 가족이 일궈낸 연구소 모든 공간이 파괴됐다. 절망의 와중에도 아내는 이 들꽃 (수까치깨)을 발견하곤 탄성을 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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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우로 계곡물이 범람하는 모습. |
1년 조성 기간이 쉽지 않았다. 풀을 뽑을 때, 나무 한 그루를 새롭게 심거나 옮길 때도, 기계나 사람을 쓰지 않아 일이 진척되지 않았다. 공부보다는 건강이 우선이라며 일을 통해 체력을 키울 수 있다고 아이들에게 억지 논리를 내 세워 풀을 뽑게 했고, 아내에게는 살을 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삽질을 시켰다. 그 때는 아이 다섯을 낳지 못한 일이 천추의 한이 된, 오직 일할 사람만 눈에 보였던 시절이었다. 곤충 ‘살 데’(서식지)를 만드느라 우리 네 식구 사는 곳은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집으로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나 막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아내의 불평을 들으면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자연의 기온을 받아 사는 것이 가장 건강한 삶’이라고 고집을 부렸다. 환경 친화적인 실천적 삶을 살아내는 게 이렇게 힘이 드는 일이라고 강변도 하고. 1998년 4월 7일 결혼기념일에는 갑천에 나가 짜장면 한 그릇이라도 사 먹자고 계획했다가 결국은 진달래 기념식수를 심는 일로 대신했고. 그 때 아마 아내가 화를 내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아내는 진달래의 핏 빛 꽃이 자기 눈물이라며 진달래를 싫어한다.
온 가족이 하루하루 온 몸을 하얗게 불태우며 일을 해도 여자 하나, 아이 둘 그리고 나까지 넷밖에 안 되는 인원이었으므로 더디게 진행이 될 수밖에 없었고, 시간이 간다한들 완성은 어려울 것 같아 ‘우선 문을 열고 고쳐가면서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물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하고, 양껏 햇빛이 들어올 수 있는 남향의 초지만 조성 했을 뿐 아직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아무것도 보여줄게 없어 주변에 널리 알리지 않았는데 과거 동아일보 시절 알고 지냈던 지인이 방송국에 연락하는 바람에 덜컥 언론에 보도가 되었다. 특별하기는 하지만 너무 시골 자락 한 구석에 위치하고 있어 일반인들 관심을 끌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환경 교육에 목이 마른 사람들이 많았는지 방송 후 물밀 듯 교육생들이 밀려왔다. 딱 한 번 KBS 방송 이후로 거의 모든 언론 매체가 ‘나’와 생태학교를 다뤘고 몇 일만에 꽤 유명해졌다. 순풍에 돛을 단 듯 예상 못한 엄청난 반응을 보면서 큰 성공을 예감할 수 있었다.
호사다마(好事多魔). 좋은 일 다음에는 방해가 많다 했지만, 첫 수료생을 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하루 380mm씩 며칠 동안 엄청난 양의 비가 퍼부었다. 눈앞에서 제방이 끊어지고 계곡과 연못이 넘쳐 연구소 모든 공간이 파괴되었다. ‘어쩌면 이렇게 사정없이 내릴까’ 쏟아 붓는 비를 맞으며 삽질로 물을 막는 일은 포기한 채 망연자실 하늘만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나를 불렀다. “이 것 좀 보세요. 못 보던 꽃이 예요” 그 절망의 와중에도 처음 보는 들꽃을 발견하곤 탄성을 질렀다. 여자는 강하고 당신은 나보다 더 미쳤구나. 폭우 속에서 들꽃(수까치깨)을 보면서 아내도 나 따라 미쳐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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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희망신문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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