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명을 하늘에 맡긴다는 생각으로 능선을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6.25 전쟁이 발발한 지 62년이 흘렀다. 전쟁에 참여했던 당시의 젊은이들은 지금 80세를 훌쩍 넘었고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6.25전쟁 그리고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들에 대해 다양한 잣대가 존재한다. 이 회고록은 6.25전쟁에 대한 역사적 연구가 아니다. 6.25를 경험한 한 개인이 전하는 전쟁기간 삶의 궤적이다.
횡성이라는 이름아래 함께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횡성인들의 삶을 통해 오늘 그리고 내일의 횡성을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편집자 주>
김명수 <6.25참전유공자회 횡성군 지회장>
온 산하에서 피의 혈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 맥아더 장군은 야전군 사령관으로서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하고 아군첩보 부대원을 월미도에 상륙시켜 북한군의 배치 현황을 확인했다. 상륙작전에 투입된 함정 261척이 인천항에 정착 하여 함포 사격으로 집중 폭격 후 9월 15일 인천을 탈환하고 9월 28일에는 서울을 수복했다. 이로써 인민군 테러와 보급로가 봉쇄되면서 전선이 무너지게 되고 국군의 사기는 더없이 높았다. 9월 16일 국군의 총반격으로 인민군병력은 60%에 달하는 손실을 입고 북쪽으로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6사단 7연대는 의성에서 예천-풍기-단양-원주-횡성-홍천을 거쳐 진격하였고 10월 2일에 춘천을 탈환한 후 계속 북진하였다.
춘천 38선을 지나 북진을 거듭하여 화천-금화-평강-원산까지 진격하였다. 원산에서 양덕-북창-덕천으로 계속 북진했다. 청천강을 지나 희천-고장에 이르렀다. 고장에 연대본부 지휘부를 두고 연대 수색중대장 이대용 중위는 초산을 경유하여 10월 26일에는 압록강까지 진격하였다.
이 때 7연대 헌병대 소속인 본인 김명수 하사는 헌병 3명을 인솔하고 초산에 파견되었다. 초산으로 파견되어 삼거리에 주둔한 아군과 주민들의 교통 안내를 하고 있던 26일 밤 9시경 연대 본부로부터 즉시 귀대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26일 밤9시 50분경 연대본부 OP전면에서는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7연대 전선은 중공군에게 고립되어 있었다. 중공군의 존재를 알지 못한 국군 1개 연대가 중공군에 완전히 포위된 것이다. 연대 OP에 도착해 보니 연대 OP를 중심으로 주변에 일부병력이 배치되고 있었다. 연대장 임부택 중령은 “오늘밤 내로 중공군 전선을 뚫고 나아 갈 것이니 단단히 임전태세를 갖추고 있으라”고 명령하였다.
중공군은 연대 OP를 확인한 후 집중 공격을 해왔다. 중공군의 집중공격을 받던 연대지휘 본부가 풍비박산되었다. 7연대 헌병들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당시 헌병은 1개 연대에 13명이 있었지만 이때의 전투에서 생사를 확인할 수 있었던 헌병은 나를 포함해 불과 3명이었다. 내가 인솔했던 헌병 3명중 1명은 행방불명되어 찾을 수 없었다. 나는 헌병2명을 인솔하고 오던 길 북쪽 200m밖으로 후진할 수 밖에 없었다.
1950년 10월 26일, 이 날은 밝은 달밤이어서 시야를 확인하기 좋았다.
좌우에 있는 산은 약간 경사로, 우측산 고지는 높은 편이었다. 고지로 향해 도착해보니 중공군이 주둔하였다 이동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고지에서 약 400m가 넘는 지점이 중공군 전선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5만분의 1지도와 나침반을 가지고 있었다. 청천강을 건너 덕천을 향해가기로 결정하고 산능선을 넘기 시작했다. 산을 넘고 넘어 2일 만에 산중턱에서 다래 열매를 발견했다. 10월이지만 북쪽지방이어서 바람은 찬데 먹을 것도 없이 쉬지 않고 능선을 타고 걸었던 터라 다래열매와 물로 허기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6월 28일 평안북도 운산을 지나 능선에 도착한 때는 밤 8시50분경이었다. 능선에서 내려다보니 외딴집 등불이 보였다. 능선을 내려가 무어라도 먹을 것을 찾아야 했다. 헌병2명을 인솔하고 산을 내려가 등불이 켜진 외딴 집으로 가서 먹을 것을 구하기로 했다.
“ 안됩니다. 그러다가 인민군이나 중공군이라도 만나면 어떻게 합니까.”
“ 주인장이 신고라도 하면 우리는 끝입니다.”
부하들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먼 길을 걸어온 상태였기 때문이다.
‘가야할 길은 멀다.’
나는 운명을 하늘에 맡긴다는 생각으로 능선을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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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은 함정261척을 통한 집중함포 사격이 있은 후 시도한 인천상륙작전 당시 서해의 한 모습. |
횡성희망신문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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