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까지 물은 차오르는데 초겨울 추운날씨에 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왔다. 추위로 사시나무 떨듯이 떨리는 몸으로 일행 모두 무사히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너자마자 민가에 들어가 젖은 옷을 벗고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김명수<6.25 참전유공자회 횡성군 지회장>


| 사진은 필자의 1949년경 헌병하사관학교 수료 후 임관초기 모습(왼쪽)과 최근 모습. |
6.25 전쟁이 발발한 지 62년이 흘렀다. 전쟁에 참여했던 당시의 젊은이들은 지금 80세를 훌쩍 넘었고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6.25전쟁 그리고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들에 대해 다양한 잣대가 존재한다. 이 회고록은 6.25전쟁에 대한 역사적 연구가 아니다. 6.25를 경험한 한 개인이 전하는 전쟁기간 삶의 궤적이다. 횡성이라는 이름아래 함께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횡성인들의 삶을 통해 오늘 그리고 내일의 횡성을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편집자 주>
“계십니까.”
산을 내려가 마당에 들어선 나는 주인을 찾았다.
“누구요.”
방문이 열리며 70세가 넘은 노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우리는 국방군입니다. 낙오가 되어 요기 좀 하고저 들렀습니다.”
공손히 인사 드리고 사정을 설명했다. 노인장께서는 “날씨도 찬데 어서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방에 들어간 우리를 가만히 쳐다보던 노인장은
“젊은이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네. 여기 이 젊은이들에게 밥상을 차려와라”
그제야 다른 식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며느리였다. 며느리가 차려온 밥상에는 바가지에 담은 밥과 대접에는 총각무 김치가 올려져 있었다. 우리들은 노인장께 감사히 잘 먹겠다는 인사를 드리고 정신없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이날 이 밥상은 내 생애 잊지 못할 행복한 밥상이었다.
밥을 굶어본 사람만이 배고픔의 처절한 고통을 안다. 그날 바가지에 담긴 밥은 첩첩 산중에 어울리지 않게 하얀 색이었다. 흰 쌀밥으로 보였는데 알고보니 찰옥수수밥이라고 했다. 우리 일행에게는 찰옥수수밥이 아니라 입쌀밥이었다.
정신없이 밥을 먹고 나니 감사한 마음을 무어라도 전하고 싶었다. 마침 본인은 원산에서 전우가 북한돈 100원짜리를 기념으로 가지고 있으라고 하면서 주었던 5000원을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 국방군은 북한 돈이 필요치 않으니 노인장께서 필요하실 때 쓰십시오”
5,000원 전부를 감사의 뜻으로 내놓았다.
깜짝 놀란 노인장이 “70평생을 살면서 100원 화폐를 보지 못했다”하여 북한의 어려운 생활 수준을 알 수 있었다.
노인장이 “중공군 전선을 피해 가야할 터인데 어느 방향으로 갈 계획이냐”고 묻기에 청천강을 건너 덕천으로 갈 계획이라고 하니 노인장은 잘 생각하였다고 하며 길을 잘 아는 노인장이 직접 길안내를 해주겠다고 나섰다.
“지금 출발해도 중공군 전선을 피해 가자면 내일 먼동이 틀 때야 청천강에 도달할 것이니 어서 길을 나서야 한다”며 노인장이 우리를 재촉하였다. 깊은 산 속에서 평생을 살아서인지 나이가 많은 데도 노인의 발은 무척 빨랐다. 노인장을 따라 쉬지 않고 능선을 넘고 넘기를 5시간가량 했을 무렵, “지금 지나는 곳이 평안북도 향산” 이라 고 노인장이 알려주었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가다보니 서서히 날이 밝아 오기 시작하였다.
“저기 보이는 강이 청천강이요.”
노인장이 가리키는 곳에 강이 보였다. 청천강을 건너 덕천으로 가야하는데 노인장 말로는 청천강 우측 능선에 중공군 대군이 배치되어 있다고 했다. 노인장은 강을 건너려면 지금 입고 있는 군복으로는 도저히 안 되니 저 앞에 보이는 민가에 가서 피난민 옷으로 갈아입고 강을 건너가라고 당부하고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나는 부하헌병 2명을 데리고 민가에 들어가서 한복 3벌을 얻어 갈아입었다. 국방색 군복은 흰 보자기로 둘둘 말아 각자 어깨에 둘러맸다. 옷을 갈아입고 민가를 나올 때 3명의 국방군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와 같은 국방군 낙오병들이었다.
“우리는 11연대 군인입니다. 중공군 때문에 도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면서 우리와 같이 도하하기를 요청해왔다. 나는 지금 즉시 민가에 가서 우리 일행처럼 피난민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라고 하였다. 민간인 옷으로 갈아입은 우리들 6명은 차례대로 강을 건너기로 했다. 앞사람과 20m 간격을 두고 건너기로 하고 우리가 먼저 출발했다. 강기슭에 도착해보니 강폭은 약 150m 되었다. 민간인 옷으로 갈아입었다고는 하지만 사방이 훤히 트인 강이라 중공군에게 들키지 않고 강을 건널 수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달리 선택할 길이 없었다.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강의 중간쯤 가니 허리까지 물은 차오르는데 초겨울 추운날씨에 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왔다. 추위로 사시나무 떨듯이 떨리는 몸으로 일행 모두 무사히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너자마자 민가에 들어가 젖은 옷을 벗고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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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안도를 가로지르는 청천강의 근년 모습. 필자는 남쪽의 아군과 합류하기 위해 중공군 전선을 피할 수 있는 이 강을 10월하순의 찬 수온을 무릅쓰고 걸어 건넜다. |
김명수 chamhop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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