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세’는 당연한 생태적 현상...사람 사는 세상인 ‘인간생태계’가 다를 바 무엇인가. 이웃을 인정하고 관습이나 문화를 이해하려 애쓰면 기존 생태계 균형을 깨지 않고 전통 문화에 어울려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것
1998년 첫 수료생을 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하루 380mm씩 며칠 동안 엄청난 양의 비가 퍼부어 눈앞에서 제방이 끊어지고 계곡과 연못이 넘쳐 연구소 모든 공간이 파괴되어 어디부터 손을 봐야 할지 몰라 낙담하고 있을 때 자기 일처럼 도움을 준 동네 분들이 큰 힘이 되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외지인에게 과분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훈훈한 시골 인심을 제대로 받은 셈이다. 시골로 내려오기 전 주변의 몇 몇 사람이 “ 시골 사람들 만만하게 보지 마라, 큰 코 다친다. 시골 사람들 사정 들어주다 보면 간까지 빼간다”는 말은 나에게는 헛말이었다. 다른 사람 챙기면서 저도 좋은-서로 win-win하려는 인심이야 도시든, 시골이든 다를 바가 전혀 없는데, 괜히 시골인심 운운하면서 상대편을 깔보거나 제 욕심만 차리다보면 서운하기도 하고, 틀어질 수밖에 없다. 횡성 갑천으로 이사 와 20년 지난 지금까지 자동차 보험 사기 건 이외는 크게 섭섭했거나 상처받은 일은 없었던 것 같고, 속된 말로 나에게 텃세를 부리는 사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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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월대보름행사에 윷놀이가 빠질 수 없다. |
생물학적으로 보더라도 ‘텃세’는 너무나 당연한 생태적 현상으로 생태계를 작동하는 방식이다. 원래 서식하던 종들이 자기가 사는 곳에 낯선 새로운 종(외래종)이 들어오면서 기존에 잘 어울려 살고 있던 이웃들을 괴롭히거나 결국은 못 살게 만들어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는 종을 견제하려는 기본적인 생존권이다. 그 중에서도 침입외래종(Invasive Alien Species: IAS)은 자기 목소리를 시끄럽게 내고 자기 스타일대로 휘젓고 다녀 파괴적이며, 생태계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놈으로 기존 생태계 안정과 유지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도 침입외래종들을 없애려 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다.
이같은 기본적인 생태계를 이해하면 사람 사는 세상인 ‘인간생태계’가 다를 바 무엇인가. 비켜서지 않고 부딪치니 요란하고, 밀어내려 하니 밀리는 것이니 동네 인심 탓하지 말고 자기를 뒤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어색할 수 있는 불편함을 섭섭하다, 시골 인심 더 무섭다 하면 안 되고 오히려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평화를 깨뜨리지 않으려 숨죽이는 이웃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일이다. 이웃을 인정하고 그들의 관습이나 문화를 이해하려 애쓰면 기존 생태계 균형을 깨지 않고 전통 문화에 어울려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늘 마음에 새기고 횡성 갑천은 잠간 머물다가 갈 곳이 아니고 멀리,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할 터전이었으므로 동네 원주민이 되는 방법을 생각했다.
가장 먼저 아이들을 금성 분교로 전학시키고, 마을 어른들이 가장 좋은 선생님이므로 하루에 몇 번을 뵙더라도 인사하라고 두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켰고, 나와 아내도 학교 행사, 동네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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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마을주민들 |
동네 학부형들과 술 한 잔 마시며 나누는 이런저런 대화로 몸과 마음이 가뿐해지니 참 좋은 인연이구나 싶었다. 일기일회(一期一會)! 지금 이 순간, 단 한 번의 만남이 모여 삶을 이어가고 역사를 만든다는 것을 생각하면 한순간도 소홀할 수 없었고 사심 없이 즐거운 만남이 이어졌다. 마을과 학교를 통해서 생생하게 ‘더불어 사는 법’을 아이들도, 나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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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주민들의 단체관광 |
어느덧 옛날 일이 되었지만 동네 큰일인 장사 지낼 때는 상여를 메고, 회다지도 하고, 혼사가 있으면 돼지 잡고 열심히 밥 나르면서 손님 접대를 했다. 이웃 집 추수 때는 하루 종일 볏단을 모아 낟가리를 쌓으면서 진땀을 흘리고, 탈곡을 하면서 먼지와 따가운 볏짚 부스러기를 온 몸에 뒤집어썼다. 생전 해보지 않았던 시골 일이었지만 원주민과 희로애락을 공유하고 화합하는 일이라 여겨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했다.
요즘은 철저한 소 이력제로 그런 일은 없지만 “외지 소가 횡성에 6개월 살면 횡성한우 된다”는데, 나는 이사 온 지 2년 만에 횡성한우보다 훨씬 빨리 원주민 대접을 받았다. 돌아가신 이민호(현재 이상면 지도자 부친) 노인 회장께서 직접 내 집으로 찾아 오셔서 동네 ‘촌장’을 맡아 달라 부탁하신 일이다. 이사 온지 고작 2년 반이 지난 1999년 12월 이었다. 그 전에 일 잘한다, 고맙다고 칭찬하시더니 대동을 앞두고 미리 내게 동네 사정을 귀띔 하며 부탁하셨다.
물론 나는 거절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동네 사정에 전혀 익숙치 않을 뿐만 아니라 농사도 한 번 지어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이장을 하느냐고. 그 이후로 몇 번의 고사 끝에 더 이상의 거절이 민망해서 “마을 발전을 위해 일하면 동네 이장이지 이장이 뭐 별거인가” 하는 심정으로 겁도 없이 덜컥 승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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