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생물학자 이강운박사의 생태이야기
이장 몇 개월 만에 알게 된 진리 ‘말이 통해야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법’[생물학자 이강운 박사의 생태이야기] (18)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7.02.21|(123호)

농사 한 번 지어보지 못했으니 대화 자체가 되질 않아...선진지견학으로 이장단과 친해지고 방송촬영하며 마을주민들과 친한 척하다 진짜 친해져

겨울 끝자락에 몰아친 만만치 않은 강추위와 폭설로 가장 겨울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불과 며칠 전만해도 끝장 추위로 실내에서 꼼짝달싹 못하던  때에 비하면 많이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아침, 저녁으로는 겨울이고 추위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얼굴에 부딪히는 따가운 찬바람은 어느덧 기분 좋은 부드러운 바람으로 얼굴을 간질인다. 봄으로 들어서는 입춘(立春)이 지나고 우수(雨水). 이미 우수 무렵이면 봄기운이 돋고 초목이 싹튼다. 우수는 눈이 녹아서 비나 물이 된다는 날이니, 곧 날씨가 풀린다는 뜻으로 땅을 갈아야 할 이 때 쯤 농촌은 매우 바쁘다. 동네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올해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할지 새해 영농 설계하느라 분주하다.
 지금이야 곤충과 씨름하느라 산골짜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이장 되던 첫 해인 2000년도에는 마을회관에서 실패하지 않고 수익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느라 고민하시는 동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다. 영농에 관심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주민들과의 소통을 위함이었다. 현실적 감각 없이 이장 일을 시작하면서 많이 힘들었고 동네 어르신들을 스승으로 삼아야 겨우 이장 일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갑천면 이장단 부부의 2박3일 선진지견학은 이장님들과 친해지는 계기가 됐다

 이사 온지 고작 2년 반밖에 안 된 나에게 동네 이장을 맡아 달라 부탁하신 노인 회장님의 청을 마냥 물리칠 수 없어 겁도 없이 덜컥 승낙을 했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려니 눈앞이 캄캄했다. 동네 사정에 전혀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농사 한 번 지어보지 못한 사람이니 대화 자체가 되질 않았다. 금성분교 학부형들이야 아이들 교육과 관계되는 공동의 주제가 많아 얼마든지 이야기하고 소주 한 잔 기울이며 고민과 해결을 같이 할 수 있지만 이장은 아니었다. 최소한 이장은 각 가정에 어떤 힘든 일이 있는지, 부부간 금슬은 어떻고 속 썩이는 자식이 있는지, 누구하고 몇 촌간 친척인지, 저소득층 대상자인지, 숟가락은 몇 개고 젓가락은 또 몇 개인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몰랐다.

동네 주민들을 도우려는 이타적(利他的)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오히려 피해를 끼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비빌 언덕이 전혀 없었다. 전임 이장은 생떼를 부리다 쫓기듯 물러갔으므로 전혀 도와 줄 생각이 없었고, 이장 회의에 가서 친한 척하며 다른 동네 이장들에게라도 도움을 요청할라하면 먼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나를 피한다. 이사 온지 며칠 되지도 않은 이상한 놈이 이장으로 선출됐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들보다 가방 끈이 길어 혹시 무시당할지 모른다는 노파심으로. 2박 3일 선진지 견학이라는 명목으로 부부 동반 여행 이후 모두 친해지면서 나중에 들었다. 막상 마음을 열어보니 곁을 줄 수 있는, 동네 이장으로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털털한 놈이라고.

하대2리 마을관광


 전혀 생각지도, 경험해 보지도 못한 새로운 일탈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사라진 추억이지만 이장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새벽에 앰프를 통해 주민들이 출하한 농산물 값을 방송하는 일. 아이들은 아빠 목소리가 방송을 통해 나온다고 방송국 MC같다고 좋아라 했지만 농산물에 대한 감각 없이 방송하는 일은 고역 중의 고역이었다. 최소한 농산물 특성과 시세를 알기위해 봄부터 농사를 시작했다. 쌀, 고추, 배추, 옥수수, 감자 등 기초 농산물과 가시오가피, 두릅, 복분자,  더덕 같은 특용 작물을 재배했고 꿀, 버섯을 키웠다. 물론 대부분 씨앗 값도 건지지 못했지만 주민들의 안타까운 마음이 동정으로 바뀌면서 훨씬 더 친해졌고 다소나마 숨통이 트였다.

 결정적으로 주민들과 가까워진 일은 ‘KBS 6시 내 고향’ 제작진에서 홀로세생태학교를 촬영하고 싶다고 제안이 와서, 나보다는 우리 동네를 주제로 찍자고 의견을 냈고 그 쪽에서도 흔쾌히 수락. 촬영 준비를 하면서 그렇게 친한 정도는 아니지만 친한 척 쇼를 하다가 정말로 친해졌다. ‘우리 동네 이장님은 박사’라는 제목으로 동네 주민들의 삶과 내 이야기가 섞여 방영되었고 방송 촬영 이후로 비로소 하대2리 이장이 되었다. 이장단 회의에도 열심히 참석해서 이장들과 친해지면서 고스톱으로 많은 이장님들을 울리기도 하고. 면사무소 담당 직원과도 깊은 교우 관계를 유지했다. 당시 하대리 담당인 안재술씨는 물심양면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위해, 잘 모르는 이장 때문에 고생할 우리 동네 주민을 위해 열심히 도와줬다. 작년 갑천면 산업 계장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달려가 인사를 했다. 진정 주민을 위해 진심을 다 하는 영혼있는 공무원 때문에 이장 3년을 무사히 잘 넘겼고, 고마웠다고. 말이 통하고 내 진심을 주변 분들이 이해하면서 걱정 어린 시선들이 많이 없어졌고 이장 노릇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이장시절 준공했던 하대2리 마을회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말이 통해야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법. 이장 몇 개월 만에 나도 그런 진리를 알았는데,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그걸 모르고 혼자 밥 먹고, 혼자 드라마 보며, 염병할 것들 하고만 비밀스럽게 쿵짝을 맞추었으니 나라꼴이 말이 아닌 게 당연하다.
 이장에서 군수 하다가 바로 행자부장관 그 뒤로도 도지사까지, 현재는 국회의원인 김두관씨도 남해 이장 2년 경력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3년 이장 한 나도 시켜주면 군수, 장관도 할 수 있다고 가끔 술자리에서 농담을 하곤 한다. 돌아보니 이장 자리는 대통령을 시켜줘도 할 수 있을 만큼 정치적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고되지만 보람 있는 자리였다.

횡성희망신문  hschamhope@naver.com

<저작권자 © 횡성희망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횡성희망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스포츠
여백
신문사소개ㆍ기사제보ㆍ광고문의ㆍ불편신고ㆍ개인정보취급방침ㆍ청소년보호정책ㆍ이메일무단수집거부
(25234)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앞들서2로 23(2층)  |  전화 : 033)342-1507  |  팩스 : 033)343-1507
등록번호 : 강원아00116(2012.02.08)  |  발행인 : 합자회사 횡성희망신문 조만회  |  편집인 : 조만회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용희
계좌 : 합자회사 횡성희망신문 농협 351-0755-0672-03  |  이메일 : hschamhope@naver.com
Copyright © 2026 횡성희망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