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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40대? 헛발질 아니었다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7.03.26|(125호)

이장 일을 하면서 때에 맞춰 사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혔고, 머리를 맑게 하는 노동의 가치 알게돼...나이 들면서 곁을 줄 수 있는 친구나 이웃을 얻었으니 절대로 헛발질이 아니었다

이장일을 하며 곁을 나누게 된 이서훈, 이현태, 김순태이장. 김순태 이장의 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

보임의 준말인 '봄'은 모든 생물들이 불같이 일어나 일제히 활동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어 봄이라 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바람이지만 훈훈한 봄바람으로 모든 생물을 움직인다. 잠자는 나무를 깨우고 긴 터널 같은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던 생물들에게 온기를 선물한다.
밤사이 얼었던 물방울이 ‘낮이 되면 녹았다, 해가 지면 다시 얼었다’를 반복하며 좀처럼 봄이 올 것 같지 않던 날씨가 해가 길어지면서 꽁꽁 얼었던 땅이 녹고 있다.

각시멧노랑나비의 알

생강나무 샛노란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고, 목숨 줄 잇는 ‘명이나물’이라고도 하는 산마늘이 마늘 맛과 향이 물씬 나는 시퍼런 잎을 꼿꼿이 세우고 봄을 즐기고 있다. 언 땅 수북이 쌓인 낙엽사이로 ‘이별의 슬픔’ 같은 상사화가 늦은 삼월의 아침 햇살을 맞고 있다. 샛노란 복수초가 만개했고 꽃잎위에 꿀벌도 꿀 모으느라 정신이 없다.

만개한 생강나무

마음 바쁜 각시멧노랑나비는 벌써 애벌레가 먹을 식량인 갈매나무에 삐죽하게 생긴 알을 가지런히 낳았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곳곳에 자리한 크고 작은 연못에도 봄은 와 있다. 알 속 올챙이들이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했고, 도롱뇽 알 꾸러미들도 연못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있고, 새끼 손톱만한 버들치 치어들도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작년만 해도 2월 16일 전후해서 북방산개구리들이 알을 낳았고 2015년에는 2월 17일경 알을 낳은 후, 며칠간 계속된 강추위로 알 전체가 깨어나지 못한 채 죽어버리는 재앙이 있었다.

복수초와 꿀벌

연구소 주변에 올챙이 씨가 마르면서 멸종위기곤충인 물장군 새끼들에게 시기적으로 딱 맞는 가장 좋은 먹이인 올챙이를 구하려 전국을 헤매었다.
옛날에 비하면 개구리 울음 소리도 거의 듣지 못하고 올챙이도 형편없이 줄었지만 그래도 올 해는 경칩 지난 12일경부터 비로소 알을 낳기 시작해 잘 자라고 있다. 몇 년에 걸쳐 철모르고 괜히 서두르다 일찍 알을 낳고 제 명에 못 살고 전멸한 기억을 갖고 학습을 한 때문인지 철을 맞췄다.
 
다 때를 맞춰 꽃도 피고, 짝짓기를 하고 번식을 위해 알을 낳는다. ‘제철 음식이 몸에 가장 좋다’ 하는데 사람의 신체 리듬과 철에 맞게 나오는 음식이 궁합이 맞기 때문이다. 일도 다 때가 있는 법.  단 번에 성공적인 결과를 낼 수 없고 일을 해 나가는 동안 온갖 시행착오와 실수를 통해 배우고 수정해야 하는 데 너무 늦은 나이에 내 꿈에 도전은 무리일 것 같아 나이 40에 산 속으로 왔거늘.

요즘은 곤충과 씨름하느라 산골짜기에서 꼼짝 못해 동네일과는 교류가 적은 편이고 기껏해야 연말 대동 때 인사 나누는 정도지만 이장 시절에는 거의 면에서 살았던 것 같다. 일을 대충 하는 성격도 아니고, ‘좋은 게 좋은’ 식이 아니어서 이장 3년 내내 골머리를 앓고, 문서 작성이나 행정 처리 등 곁에서 이장 봐주던 아내와 동네 일로 부부싸움을 많이 했다.

하지만 얻은 게 더 많았다. 내 꿈을 차근차근 현실로 만들면서 한참 연구에 매진해야했던 시기이지만, 조금 늦게 가는 대신에 동네 어르신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이장 일을 하면서 자연의 순리에 맞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고, 농산물 시세를 알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농부의 수고와 농업의 숭고함을 알았다. ‘시골에서 농사나 짓지’라는 말이 얼마나 무식한 말인지, 농사는 아무나 잘 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세월의 마디를 느끼지 못하고 자연의 변화에 무딘 채 도시내기로 40여 년을 살다가 산 속 오지의 이장 일을 하면서 때에 맞춰 사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혔고 머리를 맑게 하는 노동의 가치를 알게 됐다.

며칠 전 갑천 농협에서 김순태 이장과 이서훈 이장을 오랜만에 만났다, 김순태 이장은 아주 오래 전 딸이 서울대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 일처럼 기뻐서 병지방으로 달려가 밤늦도록 소주를 나누었던 좋은 친구다. 이서훈 이장님은 아내가 연안 이씨 집안이라며 나를 매부라 부르는, 털털하시고 법 없이 사실 좋은 분으로 큰 형님으로 모시고 있다. 농협에서 근무하는 그 아들 진규 까지도 인연을 이어 잘 지내고 있으니 더욱 좋다. 이현태 이장님, 갑천 화성 슈퍼 아주머니, 이대균 군의회의장님과 동네 어르신인 최성수씨 부인까지 연안 이씨 집안 분들이 꽤 많으며 좋은 이웃으로 잘 지내고 있다. 얼굴 보기 힘들다고 ‘아직도 갑천에 사느냐’ 는 핀잔을 받지만 정이 듬뿍 담겨있는 정겨운 인사로 이장 시절 자주 만나 오랜 기간 흉허물 없이 잘 지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인사다.

왕성하게 연구 활동을 해야 할 40대 초반에 3년 동안 연구소가 아닌 동네 일로 몸살을 앓았으니 내 스스로 헛발질 한 '잃어버린 40대'로 표현하곤 했는데 나이 들면서 곁을 줄 수 있는 친구나 이웃을 얻었으니 절대로 헛발질이 아니었다.

횡성희망신문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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