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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길은 멀고...[생물학자 이강운 박사의 생태이야기] (21)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7.04.25|(127호)
소똥구리에게 신선한 똥을 주기 위해 방목하는 소와 눈맞춤하고 있는 필자

아침저녁으로는 아직 춥고 해만 뜨면 더워 내복을 입었다, 벗었다를 매일하고 있다. 깊은 산 속이라 다른 곳보다 늘 꽃은 늦게 피면서도 훨씬 빨리 저버리는 바람에 오랫동안 봄꽃의 아름다움을 즐기지 못한다. 피 토하듯 깊은 골 따라 만개했던 진달래와 순백의 앵두나무, 살구나무 꽃잎이 날리고 뒤 늦게 그제부터 겨우 분홍빛 꽃 피기 시작한 벚꽃도 벌써 떨어질 채비를 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피어나선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렇게 많은 꽃들로 형형색색 수놓고 있는 멋진 자연을 미처 즐길 사이도 없이 꿈처럼 지나간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 했거늘 열흘이 아니라 며칠밖에 피지 못하는 산속의 꽃들도 아쉽겠지만 속절없이 꽃을 떨어뜨리는 바람도 봄비도 야속하다.
 새 순이 나오고 꽃이 피자 월동하던 애벌레가 움직이고, 벌이 윙윙거리며 꿀 모으느라 바쁘고 낮에는 나비가, 밤에는 나방이 새끼를 키우기 시작하자마자 얼마나 많은 새 소리가 들리는지. 동트는 새벽부터 열심히 지저대던 오목눈이도 자기 깃을 떼어내 따뜻하고 안락한 정교한 둥지를 틀었다. 둥지를 열자 10개의 알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보통 6~7개의 알을 낳는데 특히 올봄에는 겨울 가뭄을 풀어주는 '약비'가 때맞추어 내려주니 식물도 잘 자랄 것이고 식물을 먹고 사는 곤충 애벌레들도 풍부할 것이라 미리 짐작한 오목눈이가 더 많은 새끼를 키우려 하는 것 같다. 꽃은 꽃대로 잎은 잎대로 자연의 속도를 맞춰, 먹이가 출현하는 철에 맞춰 촘촘히 연결 된 먹이 사슬이 무리수 없이 준비된 일정표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멸종위기곤충 애기뿔소똥구리

 

소똥구리실험실을 견학하고 있는 미국,일본, 호주, 대만곤충학회장들.

며칠 전 멸종위기곤충 애기뿔소똥구리의 신선한 먹이원인 소똥을 얻기 위해 키우고 있는 횡성 한우 ‘코프리스’와 ‘업쇠’ 2마리를  방목지로 내 놓았다. 울타리를 수리하고 전기를 점검하고 중간 중간 풀이 없는 곳에 풀을 채워주는 등 한 달 이상 방목지 주변을 모두 정리한 후 소를 내 놓았다. 저 푸른 초원 위에 온통 먹이인 푸르른 풀로 달려가고 싶어 온 몸이 근질근질하여 하루 종일 풀어달라고 아우성치던 소들을 내 놓자 펄쩍펄쩍 뛰며 말보다 더 빨리 줄달음을 친다.
 소를 키우겠다고 하자 동네 어른들은 그깟 벌레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한다고 나무라기도 하고, 힘들여 소 키운다고 미쳤다고 배보다 배꼽이 훨씬 더 클 거라고. 하지만 신선한 소똥을 구하려 이곳저곳의 방목지를 헤매며 애 태우던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어떠한 충고도 들리지 않았다. 둔내의 축산기술연구센터로, 안흥으로 삽교리로 방목하는 축산 농가의 허락을 어렵게 받고 소똥을 몇 개의 통으로 나누어 고개를 넘고 산을 지나 들고 다녔다. 구제역이나 브루셀라 같은 질병 때문에 늘 농장주의 눈치를 봐야했고, 팔이 떨어질 것 같은 육체적 고통이 뒤따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상대리 안상학씨 부부의 따뜻한 배려로 멀리 안흥이나 삽교리가 아닌 가까이 있는 상대리에서 눈치 보지 않고 2년 간 마음 편하게 소똥을 구했다. 늘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작년부터 테니스 엘보로 왼쪽 팔을 거의 쓰지 못하고, 극심한 허리 디스크가 와서 오래 앉아있질 못한다. 철없는 내 친구들은 시골에서 형편 좋네! 테니스를 치고. 핀잔이랍시고 나에게 농을 거는데 굳이 설명을 하지 않고 그냥 웃는다. 그래 농사일도 완전히 몸에 배어 있고 때를 알아 쉴 수도 있고, 시골 생활 할 만하다고. 
 애기뿔소똥구리 명줄과 내 건강을 바꾸었다. 사라져가는 소똥구리를 살려내기 위해서 애쓰면서 이만큼 걸어왔지만 아직도 길은 멀고 멸종위기종 삶에 이입되어 있는 내 인생이 고달파 마음도 무겁다. 비육하기 위해 동물성 사료를 주면서 소가 미쳤고 동물성 사료를 주지 못하게 막으니 대체한다고 곡물성 사료를 주는데 이 또한 초식성 동물인 소에겐 맞지 않는 사육 방법이다. 고달프더라도 세월을 거꾸로 돌려 옛 방식으로 갯가에 매어놓거나 산에 풀어 놓고 키우는 수밖에. 

낙뢰로 화재가 발생해 무너져내린 소똥구리실험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소똥구리만 보관한 박물관이 있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소똥구리 표본을 구해서 전시하고 연구하던 박물관이었다. 똥이라는 힘들고 특별한 소재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라 세계적으로 연구자가 희소하고 연구자끼리는 국적을 떠나 서로 잘 도와주는 편이다. 그래서 자료를 주고받으며 심혈을 기울여 몇 년에 걸쳐 준비한 박물관이었는데 2009년 6월 2일 낙뢰가 떨어져 소똥구리 실험실이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불길에 휩싸였을 때 그 안에 있던 곤충 표본이라도 건지겠다고 화염 속으로 뛰어드는 아들 뒷모습이 보였다. 불 속으로 뛰어들던 아들에게 소리쳤다. “물러나”  쾅 화염에 이어 굉음이 뒤엉켰고 철근은 엿가락처럼 휘었다.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가장 가까이 있던 자식을 소똥구리 때문에 잃을 뻔했던 뼛속 사무치는 아픔을 당했다. 곁에서 보니 아빠 사는 모습이 너무 힘겨워보였던지 산 속 연구소를 떠나 2 년 전부터는 서울에서 즐겁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어려운 일을 물려받질 않아서 다행이다. 
 ‘봄에 두릅을 먹는 것은 금을 먹는 것과 같다’라는 방송 멘트를 듣고 두릅을 따러 방목지에 들렀더니 모든 두릅 목이 다 날아갔다. 좋은 줄은 알아서 소가 이미 다 먹었고 나를 보더니 내 옆으로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고 애교도 부리고. 애완견이나 다름없다. 소와  눈을 맞추며 함께 나란히 걸어가면 마음이 편해지는 게 전생에 목자가 아니었나?
 일주일 전 4월 15일, 아들을 결혼시켰다. 결혼식 전날까지도 빼곡하게 숨고를 시간도 없이 강의와 국회 발표로 일정이 짜여져 있었고, 세계적인 멸종위기곤충인 붉은점모시나비는 매일 매일 쑥쑥 크면서 ‘밥 달라, 똥 치워달라, 너무 복잡하니 좀 아늑하게 살 수 있도록 집도 정리해달라’ 끊임없이 요구하니 전쟁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월동에서 깨어난 멸종위기곤충 물장군 먹이인 물고기도 주어야하고 나중에 알에서 나올 새끼 물장군이 먹을 양식인 올챙이 키우느라 하루가 짧다. 온도를 조절해 암컷, 수컷 성분을 분석해 짝을 짓기 위한 신방을 차려주는 일도 이 맘 때쯤 꼭 해야 할 일이다. 멸종위기곤충 돌보는 일 이외에 특히 올 해는 기술센터의 ‘별난 체험 학습’에 선정되어 학습장을 꾸미느라 터를 고르고, 길을 만들며 식물을 심고 옮기고 종일 땀 흘려 일하느라 더욱 정신이 없었다.

2009년 화염에 휩싸인 소똥구리실험실로 뛰어들던 아들이 결혼을 했다.

 더욱이 아들 결혼 일이 세월호 아이들 삼년상과 겹쳐 청첩을 하면서도 정신이 사나왔다. 이 사무치게 아름다운 봄을 같이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가여워서 축하만 해 줄 수 없었다. 꽃보다 아름다운 며느리와 꽃보다 눈부신 아들 결혼에 제대로 준비 없이 치룬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준비했던 주례사도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해 속상하고. 꽃이 지고 잎이 나니 봄날은 갈 것이다. 아픔, 속상한 괴로움 모두 갖고 잔인한 4월과 함께 바람처럼 사라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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