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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나온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7.07.10|(132호)
조만회(횡성희망신문대표)

침묵은 불의에 대한 동조이며 악의 뿌리를 무성케 하는 질 좋은 거름이다. 자칭 ‘시민사회세력’은 남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기에 앞서 그동안 횡성의 불의에 침묵하며 외면했던 스스로에 대해 뼈아픈 반성과 성찰을 해야한다.

 

 

올해 어느 언론사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가정과 학교, 직장 등 일상에서 자신의 의견을 얼마나 표출하고 있는지를 설문을 실시했는데 설문 결과 다수의 시민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진 서열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말’을 억누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학, 취업, 승진 같은 삶의 경로에서 자칫 말 한마디로 뒤처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사람들을 짓눌렀다는 것이다. 공동체내에서 자신의 입장이 다수의 의견과 같으면 적극적으로 동조하여 생각을 표출할 수 있지만 소수 의견일 경우에는 남에게 나쁜 평가를 받거나 고립되는 두려움에서 이런 결과를 나오게 한다. 고립에 대한 두려움과 주류에 속하고 싶은 인간의 강한 욕망이 침묵을 선택하게 만든 것이다.

공동체 구성원들 간 권력의 위계를 중시하고 한정된 자원의 분배와 연관된 경쟁이 치열한 사회일수록 사회 구성원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로부터의 ‘따돌림’과 분배에 대한 ‘불이익’을 우려해 ‘침묵’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자신에게 아무런 해가 없고 더 나아가 이익이 된다면 기꺼이 침묵한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불의와 불합리함을 알면서도 입을 다무는 사회를 만든다. 권력의 위계를 중시하고 경쟁이 치열한 한국사회에서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 침묵의 처세술이 광범위하게 설득력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침묵’은 횡성에서도 익숙한 삶의 지혜이자 문화이다. 지역의 한정된 자원을 독점한 소수의 기득권세력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과 다른 생각, 다른 목소리를 용납하지 않았다. 자신들과 다른 생각과 목소리를 내는 지역민들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불이익을 주고 공동체에서 ‘왕따’를 만들어 배제시키는 방법으로 지역민들에게 침묵을 강요했다. 지역민들 또한 ‘찍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들의 삶의 안위를 위해 침묵을 선택했다.

이런 횡성에서 모처럼 침묵을 깨는 목소리가 나왔다. 최근 있었던 검찰의 군청 압수수색에 대해 ‘횡성행동’ 명의의 성명이 발표된 것이다. ‘횡성행동’은 성명서에서 군청 압수수색을 초래한 군수의 사과와 이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의회에 대한 비판, 그리고 공무원들에게 군수가 아닌 군민을 위한 행정을 촉구했다.

횡성이 이 지경에 이른 것에 대해 군수와 군의회, 공무원 모두 책임이 있다는 이들의 지적은 타당하다. 하지만 그들의 비판은 지역민들에게는 설득력있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군수와 군의회, 공무원들의 불의와 불공정에 대해 감시, 견제하고 개혁을 촉구해야 하는 것이 시민사회세력을 자칭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역할이었다. 그리고 지역민들은 그들에게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이른바 횡성의 시민사회세력이라는 이들은 횡성의 불의와 불공정에 대해 침묵했다. 지역의 약자들이 기득권세력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어려움에 처할 때 함께 그 부당함을 지적하고 정의를 바로세워야 했다. 그러나 횡성의 불의와 약자들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비겁한 침묵을 선택했다. 참으로 듣기 부끄럽게도 “보조금 장사하니 침묵한다”는 말조차 주민들로부터 들어야했다. 어느새 횡성의 시민사회세력은 주민들의 평가처럼 말 그대로 ‘자칭’ 시민사회세력이 되었고 또 다른 형태의 기득권세력이 된 것이다. 그 동안 불의에 침묵하면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뼈아픈 반성과 성찰이 빠져 있기에 ‘횡성행동’이 모처럼 목소리를 높여도 지역민들에게는 진정성있는 울림으로 다가가지 않고 “너나 잘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이다.

강자의 불의함과 불합리함에 대해 강자들은 약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강자의 강요에 굴하여 침묵을 선택하는 사회는 반드시 불의와 부패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횡성처럼 지역의 불공정과 불합리함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침묵의 문화가 지속된다면 그리고 시민사회세력을 ‘자칭’하는 이들이 여전히 ‘침묵’을 선택한다면 횡성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민선 5기와 6기에 반복되고 있는 사정당국의 압수수색이 이를 증명한다.

“악정을 보고도 듣고도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 또한 용서받지 못할 ‘죄악’이다. 침묵은 동조이며 악의 뿌리를 무성케 하는 질 좋은 거름이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 횡성의 시민사회세력은 지역의 불의와 불합리함에 대해 정의와 이성의 회복을 외치고 있는가? 한국의 대표적 인권변호사인 한승헌 변호사는 이런 말을 했다. 늦게 나온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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