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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만회(횡성희망신문 대표) |
2월은 졸업의 계절이다. 필자도 얼마 전 딸아이 고등학교 졸업식에 다녀왔다. 그런데 졸업식의 분위기는 3년 전 축하와 격려로 가득했던 입학식 때와는 매우 달랐다. 모두가 시작은 동일했지만 결과는 상이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성과를 얻은 학생들과 그 가족들의 환한 미소와 자신과 주변의 기대를 충족하는데 실패한 학생들과 그 가족의 침울한 모습이 확연히 대조되어 불편하고 어색했다. 아예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은 아이들도 있었다. 횡성을 비롯한 전국의 대부분의 고등학교 졸업식의 모습도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졸업은 자신의 욕구를 절제하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소정의 교육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학생들에게 그 성취에 대한 축하와 새로운 시작에 대한 격려를 하는 자리이다. 그러나 요즘 졸업식을 보면 축하와 격려의 자리가 아니라 기성세대가 정한 기준에 따라 학생들의 성과를 평가하고 승리자와 패배자로 구분하는 자리로 변질된 느낌이다. 우리 나라와 같은 학벌 위주의 무한 경쟁 사회에서 대학 입시 성적은 한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계층을 정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졸업식이 그러한 성과를 확인하는 자리가 된 것이다.
학생들이 지닌 능력과 잠재력은 다양하고 그들의 환경도 다르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소위 말하는 명문 대학에 진학했는지와 같은 획일적인 기준으로 학생들의 성과를 평가한다. 그러나 이 기준은 언제나 강자에게 유리하고 약자에 불리한 기준이다. 지금의 대학 입시 경쟁은 그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횡성과 같은 열악한 교육 여건을 지닌 지역에서 이 기준을 충족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 기준의 충족을 위해 횡성군에서 많은 예산을 투입해 인재육성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결과는 극소수의 학생들만 혜택을 볼 뿐이다. 따라서 기성세대가 정한 동일한 기준으로 횡성의 학생들의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많은 학생들에게 열패감과 상처만 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횡성의 아이들이 이러한 마음의 상처의 열패감을 가지고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면 횡성의 아이들과 횡성 지역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졸업은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다. 그동안 우리의 아이들은 자신들이 기울인 노력과 아픔, 좌절과 방황,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각자 나름의 크기와 모습으로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우리 어른들은 우리아이들의 이러한 성과에 대해 축하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아이들을 평가하는 기준을 바꾸어야 한다. 강자의 기준을 적용하여 평가하는 우리 기성세대의 의식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횡성의 아이들은 우리 횡성의 미래이다. 그들의 능력과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배려하고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횡성의 미래 또한 밝다. 졸업을 하는 횡성의 모든 아이들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승리자이다. 그들 모두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내고 미래를 축복해주는 일은 우리 어른들의 몫이다.
조만회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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