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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만회(횡성희망신문 대표) |
눈앞에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인간이 많아질수록 사회 환경은 깨끗해지고 사회적 규범도 굳건해 진다.
설이면 객지에 나갔던 사람들이 고향을 찾는다. 고향 마을 어귀마다 ‘고향에 오심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리고 한동안 보지 못했던 가족과 고향 사람들을 만나 정을 나누며 낯선 타인들과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삶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이렇듯 설은 우리에게 무너져가고 있는 공동체와 공생적 삶을 잠시나마 복원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설의 의미도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만큼 공동체와 공생적 삶의 모습이 우리의 생활에서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던 공동체와 공생적 삶의 모습이 급격히 무너져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전에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이웃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돌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어려운 이를 외면하고 공동체보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일은 용납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협력과 배려의 미덕은 사라져가고 경쟁과 이기심만이 활개치고 있다. 세상이 변한 것이다.
이러한 세상의 변화를 보면 ‘공유지의 비극’이 연상된다. 공유지의 비극은 주인이 따로 없는 공동 방목장에선 농부들이 경쟁적으로 더 많은 소를 끌고 나오는 것이 이득이므로 그 결과 방목장이 황폐화되거나 공동 어장에서 어부들이 남획을 하여 어족자원이 고갈되어 모두가 손해를 보는 현상을 말한다.
공유지의 비극은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지자체) 보조금을 ‘눈먼 돈’, ‘공짜 돈’으로 생각하는 인식이다. 국가(지자체) 보조금은 공익 증진과 사회적 약자 지원을 통해 공동체 전체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국가 세금으로 지급되는 것이다. 이를 일부 소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쓰고, 다수의 사람들은 보조금의 적절한 사용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방만하게 사용되도록 방치해 보조금의 본래 목적을 상실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조금이 투입돼 진행된 ‘새농어촌'이나 ’권역사업‘과 같은 마을 사업은 사사로운 이익을 얻고자 하는 일부 사람들과 해당 마을의 집단이기심으로 망가져 마을 발전은커녕 마을 인심만 각박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을개발사업이 진행된 마을, 송전탑이나 발전소건설로 지원금이 유입되는 마을들 상당수는 ‘돈이 들어오면 마을이 망가진다’는 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의 것이 아니기에 함부로 훼손되고 방치되는 공공시설 또한 공유지의 비극을 보여주는 우리 곁의 사례 중 하나다.
공유지의 비극은 사람들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인간은 이기적이라 전제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학의 전제로는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악한 행위에 대해 그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으려 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서로 협조하여 전체가 공생하는 길을 모색하는 ‘용기있는 인간’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 선에는 선으로 보답하면서 공동선을 파괴하는 악을 바로잡아 공생적 삶을 지향하는 인간이 ‘용기 있는 인간’이다.
용기 있는 인간은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사람에게는 협력으로 대응하고 공동선을 파괴하는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한다. 눈앞에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용기 있는 인간이 많을수록 사회 환경은 깨끗해지고 사회적 규범도 굳건해 진다.
지금 지역의 현실은 공동체 전체의 발전보다 개인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 ‘양지’를 차지하고 이런 불공정한 현실에 대해 뒷담화로 불평은 하지만 불이익이 두려워 당당히 비판할 용기가 사라진 사회가 되었다. 이런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일 수 없다. 결국 지역이 좋은 사회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공생보다 개인적 이익을 우선하는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이다.
지역이 좋은 사회, 살기좋은 사회, 살고 싶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기적 욕심을 앞세우는 ‘이기적 주민’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옳고 그름에 대해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주민’이 늘어나야 한다. 그래야 지역의 성격과 정체성, 품질과 수준이 달라지고 좋은 사회로 발전할 수 있다.
조만회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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