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저 사람은 되는데 나는 왜 안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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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만회(횡성희망신문 대표) |
주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행정이어야 주민들이 행정을 신뢰하고 주민 간의 불필요한 불신과 갈등도 사라진다
“대체 기준이 뭡니까?” 횡성에서 소를 키우는 어느 농민은 답답하다고 했다. 자신의 농장부지에 축사를 신축하기 위해 군으로부터 개발행위허가까지 받았는데 민원조정위원회에서 축사 건축을 할 수 없다는 처분을 받았기 때문이다. 불허처분받을 객관적인 근거도 없어 ‘다수인의 민원’이라는 이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경우다. 개발행위허가를 받기까지 상당한 비용을 지출한 상태에서 갑작스런 군의 불허 처분으로 인한 손해는 온전히 이 농민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불허 처분의 기준이다. 횡성군은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한 불허 사유를 내세웠다. 관련부서는 물론 담당 공무원조차 불허 사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렇게 행정의 기준이 모호하고 자의적 해석의 여지가 많을 경우 행정의 일관성과 신뢰도가 떨어져 주민들의 불만과 민원을 발생시키고 그 피해 또한 주민들이 감당해야 하는 결과를 낳는다. 행정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은 횡성군이 청렴도 평가에서 전국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주민들의 가장 큰 불만은 ‘안 되는 것을 되게 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저 사람은 되는데 왜 나는 안 되는가”이다. 되고 안 되는 기준이 법과 조례와 상관없이 달라지니 많은 주민들은 되고 안 되고의 기준이 군수와의 거리 즉 군수와의 친소관계와 표계산에 있다고 본다. ‘군수를 통하면 해결된다’고 믿는 주민들만을 탓할 수도 없다. 역대 군수들이 횡성군의 수많은 인허가의 최종 결정권을 쥔 제왕적 권력을 행사해온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장의 공무원이 공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업무를 처리해도 “군수와 잘 아는 사이여서” 혹은 “군수에게 밉보여서”, “가진 표가 많아(적어)” 등 특혜시비가 끊이질 않고 편 가르기가 나아지지 않는다. 행정의 공정성과 신뢰도는 땅에 떨어진 것이다.
행정의 공정성과 신뢰도 추락은 군수나 공무원들의 문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 사이의 불신과 갈등, 이기심으로 이어져 공동체 파괴로 이어진다. 주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정한 기준이 없다 보니 타인에 대한 배려와 양보가 사라지고 우선 나부터 살고보자는 이기심이 팽배하다. 내 집에 있는 소는 똥가루도 안 날리고 친환경적이라 괜찮고 옆집의 축사는 환경오염을 유발해 없어져야 한다. 내가 축사를 불법증축하면 생계형이고 어렵게 투자해 선진시스템을 갖춘 축사는 기업형이라며 문제삼는다. 자신의 자녀가 공무원이나 번듯한 직장인이 되기를 원하는 것을 나무랄 사람은 없지만, 옆집 자식이 부모와 함께 농사짓고 소키운다고 하면 무능한 탓 혹은 자식이름 내세운 편법이라는 등 흠을 잡기도 한다. 자신의 기준이 곧 친환경 여부, 생계형과 기업형, 기업형과 가업형의 기준이다. 이같은 ‘내로남불’의 상황이 횡성 곳곳에서 벌어진다. 여기에 행정의 신뢰도까지 낮으니 “저 사람은 되고 나는 왜 안 되는가”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는다. 행정이 주민들의 갈등과 불만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입각해 행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공감대를 통해 부족하고 잘못된 기준을 자연스럽게 개선해 나갈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공직자들이 청렴해야 한다. 청렴이란 단순히 부패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공정성, 투명성, 책임성 등 바람직한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고 사적 인연보다 공적 가치를 우선하는 것이다. 그래야 행정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가 향상되고 주민들 간의 불필요한 불신과 갈등도 해소될 수 있다.
언제까지 “저 사람은 되는데 나는 왜 안 되는가”라는 주민들의 속터짐이 이어지는 횡성이어야 하는가 ?
조만회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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