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조만회 횡성희 |
혐오와 배제는 쉽고 연대는 어려운 선택이다. 우리의 선택에 따라 공동체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창궐로 인해 전 세계 상당수의 국가들이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했다. 신천지 신자들의 집단 감염으로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는 대구는 도시 전체가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전쟁터가 됐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강원도에서 가장 많은 원주와 이웃한 횡성도 지역 사회 감염에 대한 공포가 점점 커지면서 소비가 위축되고 횡성 5일장마저 문을 닫아 지역 경기는 최악으로 내몰리고 있다. 가히 국가적 대란이라 할 수 있다.
바이러스로 인한 혼돈과 공포가 전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국가 대란의 상황’에서 수많은 시민들은 자발적 봉사와 헌신으로 위기 극복과 확진자 치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둔내의 한 어르신은 마스크 대란 속에서 손수 면마스크를 제작해 마을주민과 대구시민들에게 나누어 줬고 정치인 안철수는 의사로 돌아와 대구에서 의료자원봉사활동을 해 주위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와 대조되는 모습도 있었다. 횡성군이 침체된 지역경기 활성화를 위해 구내식당 휴무를 주1회에서 2회로 확대 시행하려 하자 일부 공무원들이 “공무원은 봉이냐”라며 반발했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한 경기침체 극복을 위해 공무원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위기 극복을 위해 공권력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가 절실한 상황에서 공직자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다 볼 수 없다. 개인의 이익만을 우선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하며 사회의 결속과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을 지향해야 할 정치인들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종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불필요한 분노와 혐오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지역 명칭을 넣은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일부 정치인들은 코로나19라는 공식 명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한 코로나’ ‘대구 코로나’라며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를 조장해 코로나19 위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 이들이 이런 언행을 한 것은 코앞에 닥친 총선에서의 승리와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이들의 잘못된 언행으로 분노와 혐오가 확산되면 사회는 더욱 병들게 된다.
일부 정치인들의 이런 언행의 이면에는 자신만 살겠다는 이기심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혼돈의 시기일수록 이기심은 자신은 물론 공동체를 파괴할 뿐이다.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28일 후’는 이런 인간의 이기심이 어떻게 공동체를 파괴하는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영화는 영국의 한 영장류 실험실에서 원숭이들이 쇠사슬에 묶인 채로 대형 스크린의 폭력 장면을 강제로 보고 있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 원숭이들은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다. 이 원숭이들이 탈출해 사람들을 공격하면서 순식간에 런던은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도시로 변하게 된다. 살아남은 소수의 생존자들이 모여 피난처를 만들지만 피난처 내의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피난처도 파괴된다. 이 영화는 인간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분노 바이러스에서 촉발된 인간의 이기심이라고 말한다. 이로 인해 인간이 자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종 바이러스의 창궐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해 모두가 안전을 위협받고 있는 이 때 분노와 혐오를 조장하고 이기심을 발현하는 것은 나와 너 우리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자신과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타자에 대한 배려와 연대의 힘이다. 둔내면 어르신의 면마스크 기부나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으로 달려간 의료진, 타인의 안전을 위해 자발적 격리를 선택한 사람들의 희생이 있어 우리 사회는 다시 건강해질 것이다.
혐오와 배제는 쉽고 배려와 연대는 어려운 선택이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선택에 따라 우리의 운명은 달라질 수 있다.
조만회 hschamhope@naver.com
<저작권자 © 횡성희망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외협력관, 6년 전 논란을 다시 꺼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