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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근 다래골’ 홍진수 소리꾼을 만나고 오다.(1)소몰이 소리를 찾아서(7)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6.09.14|(112호)
공근 다래골 소리꾼 홍진수씨 photo by jaeyoung

오죽 했으면

그 당시 돈 안 드는 의무교육기관

국민학교 조차도 못 마치고

겨우 3학년 1학기에

본인 스스로 학교를 접었을까

 

어려운 가정 형편에 1학년에 입학도 못하고 2학년에 공근국민학교에 입학 해

겨우 1년 몇 달 다닌 게

홍진수씨 가방끈의 전부다.

그래서

평생

화인(火印)처럼

못 배움의 한이 그를 따라다닌다.

 

아버지는 심장병으로

비탈진 밭 조금만 올라도 숨이 차 ‘헉-헉’ 거리셨고

오롱조롱 6 남매의 맏이로

그는 도저히 나 몰라라 하며

학교를 다닐 수 가 없었다.

 

그렇게

3 학년을 중도메이 논 채로 그는 자기키보다 큰 지게를 지고는

그길로 농사꾼이 됐다.

오직

가족과 동생들을 위해..

 

당시 동네 한문서당 일 년 학채는 쌀 닷 말

3 년 만 배우면 제 앞가림은 한다고 주위에서 권유 했지만

그는 쌀 닷 말이 없어서

3년 학채 쌀 한 가마 반이 없어서

서당 문턱도 눈으로만 바라 봐야만 했다.

***

홍 진수

1937년. 정축생, 소띠.

올해

우리 부르는 나이로 여든.

나이 무색하게 아직도 한창 바람이시다.

남양 홍씨 36 대 손.

원래 이름은 ‘학표’ 였다.

‘표’ 자 돌림.

어릴적 하도 돌림병 마을에 창궐해 아들 오래 살게 하려고

돌림자 버리고 ‘진수’ 라고 이름 지어주셨다.

아버지가.

그 이름 덕분에 지금도 여든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농사일 하며 살고 있다.

이름값 하는가 보다.

***

다래골 풍경 photo by jaeyoung

원래는 신촌 검문소 뒤편에서 태어났다

6 남매의 맏이로.

애시당초 내 땅이라곤 한 꼬레이도 없는 터라

지금 살고 있는 다래골이 골도 깊고 화전도 용이 해

그가 어릴 때 부모따라 이사를 왔다.

그 당시만 해도

임자 없는 국유림에는 알음알음 화전을 해먹어도 정부에서는 짐짓 모른 채 했다.

그는 아버지를 대신 해

화전밭을 일구고,

부지런히, 아니 죽을힘을 다 해 농사일을 했다.

줄줄이 동생 다섯 그리고 심장병으로 골골하는 아버지의 생존이 오로지

그에 손에 달렸기에.

새벽이면

그는 지게에 낭구를 한 짐 지고

장지고개를 넘어 횡성장, 이 십 여리 길을 나섰다.

낭구를 팔러.

솨리도 갔다 팔고,

참낭구 장작도 갔다 팔고.

낭구 한 짐에 옥시기 3 되.

그 옥시기를 맷돌에 타개 여덟 식구 하루밥을 해결했다.

낭구를 팔고 오지 못하면 그날 식구들은 꼼짝없이 굶어야 했다.

***

소처럼 일했다. 그는.

아니 소 보다 더 몇 배 일을 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일도 마다않고.

워낙 부지런하고 또 손끝도 야무져

어린 나이였지만 마을에서는 병든 아버지를 대신 해

농사 품앗이에 끼워 주었고,

그는 어깨 너머로 소 쟁기질을 배우고,

소몰이 소리를 배웠다.

그는 못 하는 소리가 없다.

겨리소리, 호리 소리.

논 삶는 소리, 모심을 때 부르는 단허리 소리, 논 매는 소리,

낭구 하러 갈 때 지게 목발 두드리면 하는 횡성 어러리 타령

어깨에 무거운 목도를 메고 부르는 목도소리 까지.

 

그는 천상 타고 난 소리꾼이다.

청도 좋고 소리 꺾음도 남다르다.

마라, 안 소 두 마리 말래를 태우며

그가 유장하게 소몰이 소리를 다래골에 뽑아 올릴라치면

들녘에서 일 하던 모든 사람들은 일손을 멈추고 귀를 세우곤 했다.

길 가던 길손들을 가던 길 멈추고.

***

내 소를 가지는 게 소원이었다.

어린 진수 농사꾼에게는.

하지만 소 한 마리 값이 논 5 마지기를 웃도는 형편이라

언감생심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터수 였다.

그래서 생각 해 낸 게 ‘걸립소’

이웃 사람 송아지를 얻어 다 2 년 동안 열심히 키워주고

그 소 한테서 송아지가 태어나면

그 송아지를 얻는 그런 형태가 ‘걸립소’ 다.

 

그는

자기 몸보다 더 끔찍이 ‘걸립소’를 거두었다.

그야말로 자기는 굶어도 비 노배기를 하고서라도 소꼴을 베어 날랐다.

아침 저녁으로.

그의 바람대로 걸립소는 하루가 다르게 반드레 윤이 났고 뱃속에는

곧 태어 날 송아지가 꿈틀댔다.

희망처럼.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

덜컥 6.25 가 터지고

그 다음 해 겨울

중공군과 인민군이 갈가마귀 떼처럼 다래골로 몰려들었다.

그의 나이 열 네 살 때였다.

먹거리 귀한 겨울철이라

그 놈들은 외양간에 매어 져 있는 그의 목숨보다 더 소중히 애지중지 하는

소를 끌고 나왔다.

공출이라는 명분으로.

그는 울며불며 다른 건 다 가져가도 이 소만은 안 된다고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끌려 나오는 누렁이소 커다란 두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그는 텃밭에 지천으로 나 뒹구는 방멩이 수류탄 한 개를 주머니에 넣고는

얼음 ‘꽝꽝’ 언 개울로 소를 끌고 가는 그놈들을 뒤쫓아 갔다.

수류탄을 까 그 놈들에게 던지고 소와 함께 죽기로.

그러나 모진 게 사람 목숨인가 보다.

그에게는

오롱조롱 다섯 동생과 골골거리는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가 있었다.

그는

‘꺼이꺼이’ 목을 꺾으며 다래골 눈덮힌 산을 올랐다.

싸늘한 수류탄 품에 넣은 채.

 

산 위에 올라 그는

골짜기를 향해 안전핀을 뽑고 수류탄을 냅다 던졌다.

“꽝”

조용하기만 하던 산골타데이로 굉음을 내며 눈 파편들이 꽃잎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 소리에 인민군과 중공군 놈들은 혼비백산 산으로 튀었고.

 

저녁 어스름.

마을로 내려 온 그에게는

그 놈들이 먹다만 누렁이 뼈들만이 싸늘하게 식은 채 휑뎅그레 눈밭 위를 나뒹굴고 있었다.

 

누렁이가 사라진 빈 외양간에는

아침에 먹다 남은 소여물만 싸늘히 구유에 얼어붙어있었고.

글 / 사진 : 정 재영 (소설가, 횡성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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