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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근 다래골 소리꾼 홍진수씨 photo by jaeyoung |
오죽 했으면
그 당시 돈 안 드는 의무교육기관
국민학교 조차도 못 마치고
겨우 3학년 1학기에
본인 스스로 학교를 접었을까
어려운 가정 형편에 1학년에 입학도 못하고 2학년에 공근국민학교에 입학 해
겨우 1년 몇 달 다닌 게
홍진수씨 가방끈의 전부다.
그래서
평생
화인(火印)처럼
못 배움의 한이 그를 따라다닌다.
아버지는 심장병으로
비탈진 밭 조금만 올라도 숨이 차 ‘헉-헉’ 거리셨고
오롱조롱 6 남매의 맏이로
그는 도저히 나 몰라라 하며
학교를 다닐 수 가 없었다.
그렇게
3 학년을 중도메이 논 채로 그는 자기키보다 큰 지게를 지고는
그길로 농사꾼이 됐다.
오직
가족과 동생들을 위해..
당시 동네 한문서당 일 년 학채는 쌀 닷 말
3 년 만 배우면 제 앞가림은 한다고 주위에서 권유 했지만
그는 쌀 닷 말이 없어서
3년 학채 쌀 한 가마 반이 없어서
서당 문턱도 눈으로만 바라 봐야만 했다.
***
홍 진수
1937년. 정축생, 소띠.
올해
우리 부르는 나이로 여든.
나이 무색하게 아직도 한창 바람이시다.
남양 홍씨 36 대 손.
원래 이름은 ‘학표’ 였다.
‘표’ 자 돌림.
어릴적 하도 돌림병 마을에 창궐해 아들 오래 살게 하려고
돌림자 버리고 ‘진수’ 라고 이름 지어주셨다.
아버지가.
그 이름 덕분에 지금도 여든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농사일 하며 살고 있다.
이름값 하는가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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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래골 풍경 photo by jaeyoung |
원래는 신촌 검문소 뒤편에서 태어났다
6 남매의 맏이로.
애시당초 내 땅이라곤 한 꼬레이도 없는 터라
지금 살고 있는 다래골이 골도 깊고 화전도 용이 해
그가 어릴 때 부모따라 이사를 왔다.
그 당시만 해도
임자 없는 국유림에는 알음알음 화전을 해먹어도 정부에서는 짐짓 모른 채 했다.
그는 아버지를 대신 해
화전밭을 일구고,
부지런히, 아니 죽을힘을 다 해 농사일을 했다.
줄줄이 동생 다섯 그리고 심장병으로 골골하는 아버지의 생존이 오로지
그에 손에 달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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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면
그는 지게에 낭구를 한 짐 지고
장지고개를 넘어 횡성장, 이 십 여리 길을 나섰다.
낭구를 팔러.
솨리도 갔다 팔고,
참낭구 장작도 갔다 팔고.
낭구 한 짐에 옥시기 3 되.
그 옥시기를 맷돌에 타개 여덟 식구 하루밥을 해결했다.
낭구를 팔고 오지 못하면 그날 식구들은 꼼짝없이 굶어야 했다.
***
소처럼 일했다. 그는.
아니 소 보다 더 몇 배 일을 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일도 마다않고.
워낙 부지런하고 또 손끝도 야무져
어린 나이였지만 마을에서는 병든 아버지를 대신 해
농사 품앗이에 끼워 주었고,
그는 어깨 너머로 소 쟁기질을 배우고,
소몰이 소리를 배웠다.
그는 못 하는 소리가 없다.
겨리소리, 호리 소리.
논 삶는 소리, 모심을 때 부르는 단허리 소리, 논 매는 소리,
낭구 하러 갈 때 지게 목발 두드리면 하는 횡성 어러리 타령
어깨에 무거운 목도를 메고 부르는 목도소리 까지.
그는 천상 타고 난 소리꾼이다.
청도 좋고 소리 꺾음도 남다르다.
마라, 안 소 두 마리 말래를 태우며
그가 유장하게 소몰이 소리를 다래골에 뽑아 올릴라치면
들녘에서 일 하던 모든 사람들은 일손을 멈추고 귀를 세우곤 했다.
길 가던 길손들을 가던 길 멈추고.
***
내 소를 가지는 게 소원이었다.
어린 진수 농사꾼에게는.
하지만 소 한 마리 값이 논 5 마지기를 웃도는 형편이라
언감생심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터수 였다.
그래서 생각 해 낸 게 ‘걸립소’
이웃 사람 송아지를 얻어 다 2 년 동안 열심히 키워주고
그 소 한테서 송아지가 태어나면
그 송아지를 얻는 그런 형태가 ‘걸립소’ 다.
그는
자기 몸보다 더 끔찍이 ‘걸립소’를 거두었다.
그야말로 자기는 굶어도 비 노배기를 하고서라도 소꼴을 베어 날랐다.
아침 저녁으로.
그의 바람대로 걸립소는 하루가 다르게 반드레 윤이 났고 뱃속에는
곧 태어 날 송아지가 꿈틀댔다.
희망처럼.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
덜컥 6.25 가 터지고
그 다음 해 겨울
중공군과 인민군이 갈가마귀 떼처럼 다래골로 몰려들었다.
그의 나이 열 네 살 때였다.
먹거리 귀한 겨울철이라
그 놈들은 외양간에 매어 져 있는 그의 목숨보다 더 소중히 애지중지 하는
소를 끌고 나왔다.
공출이라는 명분으로.
그는 울며불며 다른 건 다 가져가도 이 소만은 안 된다고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끌려 나오는 누렁이소 커다란 두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그는 텃밭에 지천으로 나 뒹구는 방멩이 수류탄 한 개를 주머니에 넣고는
얼음 ‘꽝꽝’ 언 개울로 소를 끌고 가는 그놈들을 뒤쫓아 갔다.
수류탄을 까 그 놈들에게 던지고 소와 함께 죽기로.
그러나 모진 게 사람 목숨인가 보다.
그에게는
오롱조롱 다섯 동생과 골골거리는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가 있었다.
그는
‘꺼이꺼이’ 목을 꺾으며 다래골 눈덮힌 산을 올랐다.
싸늘한 수류탄 품에 넣은 채.
산 위에 올라 그는
골짜기를 향해 안전핀을 뽑고 수류탄을 냅다 던졌다.
“꽝”
조용하기만 하던 산골타데이로 굉음을 내며 눈 파편들이 꽃잎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 소리에 인민군과 중공군 놈들은 혼비백산 산으로 튀었고.
저녁 어스름.
마을로 내려 온 그에게는
그 놈들이 먹다만 누렁이 뼈들만이 싸늘하게 식은 채 휑뎅그레 눈밭 위를 나뒹굴고 있었다.
누렁이가 사라진 빈 외양간에는
아침에 먹다 남은 소여물만 싸늘히 구유에 얼어붙어있었고.
글 / 사진 : 정 재영 (소설가, 횡성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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