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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내 너래울, ‘밭가래비’ 오순섭씨를 만나고 오다(2)특별기획 /‘소몰이 소리를 찾아서(10)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6.12.19|(118호)
오순섭씨의 소리에 반한 장모님 덕에 스무살 노총각이 장가를 갔다. 밭일을 하다 잠시 쉬고 있는 오순섭씨 부부

***

“순전히 제 소리에 장모님이 반해
 제가 장가를 갔구먼요.
 ㅎ ㅎ 
 안 사람이 아랫동네 문탄리에 살았는데
 태기산 자락 나물을 가면서 제 밭가는 소리를 들었나 봐요
 처갓집 식구들이.
 처고모가 중매를 해서
 결국 이쁜 안 사람한테 장가를 갔어요.
 제 나이 스무 살.
 그 때만 해도 스무살은 노총각이었어요.
 그 날 대례청에서 본 집 사람 얼마나 곱던지요.
 그 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들펀덩 거려요“

그의 소리는 타고났다.

여든이 넘은 지금도 그의 목울대에서 나오는 소리들은
청아하고 너무나 멋스럽기만 하다.

그는 못하는 소리가 없다.

정선아라리,
겨리소리,
호리소리,
논가는 소리,
회다지 선소리까지.,

가금방에서 그의 소리를 모르는 이가 없다.

그 소리,
그 밭가래비 솜씨 때문에 그는 매년 한우 축제 때
불리어 나가 그 유장한 ‘밭가래비 소리’를
섬강 둔치에 쏟아내고 있다.

그 덕분에
그는
각종 방송국과 신문사에 소개 돼
강원도를 대표하는 ‘밭가래비 소리꾼’ 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의 집 벽에는
온통
각종 언론사들이 취재한 사진들이 가득했다.
 

들깨를 털고 있는 오순섭씨 부부. 징용간 형을 대신해 농사에 뛰어든 게 13살. 이후 60여년간 농사를 지어 아이들 대학공부시키는 게 녹록하지 않았건만 오 씨는 팔십평생 무탈하게 살아 고마울뿐이라고 했다.

“제가 군 생활을 철원 김화에서 할 때였어요.
 훈련 마치고 쉬는 시간에 마침 밭에서 겨리로 밭을 가는 게 보였어요
 몸이 근질거리고 목이 욱신거려 도저히 못 견디겠더라구요.
 그래서 주인에게 한 고랑만 밭을 갈게 해 달라고 청을 했죠.
  ㅎ   ㅎ
 허지만 그 사람이 초면인 저에게 쟁기를 넘겨주겠어요?
 고향에서 쟁기질 꽤나 했다는 이야길 한참 한 후
 쟁기를  넘겨받았어요.
 처음 만나는 마라, 안 소였지만
 제가 ‘턱’하니 고삐를 바투 쥐고
‘이-러’ 소리를 하며
밭가래비 소리를 내질러 대자
그 녀석들 두말없이 ‘척-척’ 앞으로 가는 거예요.
멋들어지게 소리 한 자락 밭고랑에 깔며 밭을 갈아 나가자
구경하던 소대장님도 동료 군인들도 모두 일어서 박수를 쳤어요.
ㅎ ㅎ
덕분에 막걸리 한 사발 푸짐하게 얻어먹었구요.
뒤돌아보면
참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네요 작가 선생님“

그의 밭가래비 솜씨는 정말 타고 났나보다.
징용 간 형을 대신 해 열 세 살에 지게를 짊어지고 본격적으로 농사에 뛰어든 후
70 여 년을
그는 쟁기질을 했다.
‘밭 가래비’로
선군으로(소를 이용 해 논을 갈거나 삶는 일은 여기서는 선군이라 부른다).
올 봄 까지도..

*** 

“남들은  한창 학교에서 공부 할 나이인
 그야말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열세 살에 지게를 지고
 봉평 비얄밭을 나설 땐
 정말 힘들었어요.
 가시낭구를 하며 손을 걸켜매고, 비 노배기를 하며 소꼴을 베며
 몇 번이고 지게를 벗어 던지고 도망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쩝니까?
 형님은 머나먼 일본으로 끌려가시고 집에 일 할 사람은 저 밖에 없었으니
 그게 다 팔자지요 팔자.
 그렇게 시작한 농사일
 벌써 70 여 년이 넘어 가네요..“

그의 형님은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으로 끌려가 죽을 고비를 넘기다
해방이 되어 귀국했고,
몇 년 뒤에는 6.25 전쟁 통에 인민군에게 스러지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았다.
그래서
그는 형님을 대신 해 어린나이에 농사일을 해야 했고..

지금도 그렇게 일찍 스러진 형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그는 눈시울을 붉힌다.

물보다 진한 게 피라고 했던가..

***

“ 이곳에서 60 여 년 넘게 살았지만
  ‘너래울’ 만치 좋은 동네 없는 거 같아요
  여기가 해발 700 이라고 해요
  사람 살기 최적의 장소라고 하죠.
  거기다 이웃 좋지, 공기 좋고
  요란뻑적지근하게 살아보진 못했지만
  무탈히 80 평생 살아왔다고 하니 그저 고마울 뿐이지요.“
“지가 그래도 이곳에서 7년 여 노인회장을 지냈어요.
 노인분들 설득 해 휴경지에 농사를 지어 그 돈으로
 국내여행을 서너 번
 해외 홍콩여행까지 다녀왔구만요.
 뒤돌아보니 그게 제일 기억에 남네요.
 ㅎ ㅎ “

“단 하나
 막내 녀석 앞세운 거 빼고는..“

부모님은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그는 먼저 앞세운 막내아들만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한다.
환갑 사진에 늠름한 모습으로 서 있는 먼저 보낸 막내아들을 가리키는
그의 눈가에 어느새 굶은 눈물 한 방울 그렁인다.

“그 녀석 40 좀 넘어 그렇게 황망히 갔지만
 그 녀석 피붙이 손주들 반듯하게 커 청년이 돼
 그래도 위안이 되는 구먼요
 손주들 보면 그 녀석 살아 있는 듯 해요“

그게 바로 부모 마음인가 보다.

***

"2007 년 심장병으로 큰 수술 받았지만
아직도 근력 남 못지않아요.
그게 고맙지요.
이젠 다 정리하고 밭만 천 평 정도 부치는데
그래도 거기서 나오는 돈으로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고 사는 구먼요“

“비탈밭이지만 여기 해발이 높고 일교차 심한 덕분에
밭곡식도 채소도 아주 잘 돼요.
고추도 여기꺼는 알아줘요.“

“그냥저냥
늙은이 힘자라는 데까지 농사 지어 보려구요.
그나저나 내년에는 당장 밭갈이 할 소가 없어졌으니..
천상 이웃집 경운기 신세 져야 할 거 같아요.
평생 기계라곤 사용 해 본적 없이 농사지었었는데..“

***

그의 집 밭 모롱가지.
노부부가 도리깨질 하는 멍석아래
튼실한 들깨 알들이 가을 햇살아래
보석 알갱이처럼 ‘톡-톡’ 튀어 오르고 있었다.

지게 한 가득 들깨섶을 지고 비탈밭 오르는
그의 발길은 아직도 소싯적 못지않다.
정말 대단하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
오늘 또 실감한다.
***

둔내시장에서 사 간 막걸리 한 병과 짠지(여기선 김치를 짠지라 부른다) 한 접시가
개다리 소반에 올라왔다.

막걸리 서 너 잔에 불콰해진 
그가 
드디어
그의 유장한 소리들이 개다리 소반위로 쏟아져 내린다.

정말 청이 압권이다.
어쩜 저 연세에 저리도 멋스런 소리들을 쏟아내시는지..
천상 타고 난 소리꾼이었다
그는.

사라지는 것은 멋드러진 ‘소몰이소리’만이 아니다. 횡성한우축제 밭갈이 시연에 없어서는 안될 주인공이었던 오순섭씨의 27살 소. 오씨는 기력이 쇠한 늙다리 소를 어쩌지 못해 눈물을 머금고 팔아야 했다.

이러 이러 어디여-
마라소 올라서라
어후--어치-           
안소는 우겨를 서고
그렇지 그래 그래 잘 한다.
이러 이러--

이러 이러-
어디 어디-여--
와-- 와

마라 마라소
우겨를 서라
에치--
목도 마르고 막걸리 한 잔 생각난다
그만 쉬어 갈자
이러 -이러 -
         오 순섭 ‘겨리소리’ / 채록 : 정재영

***

된서리에 이파리 다 떨어져 나목이 된
100 년은 족히 넘었다는
그의 집 마당가 대추나무에는
까치밥으로 남겨 놓았다는 새빨간 대추들이
‘오롱조롱’ 매달려
가을 햇살에
그루잠을 자고 있었다.

그리움처럼..
                  
글/ 사진 : 정재영(소설가, 횡성문인협회 회장)
소설가. 횡성 갑천 출생
한국 문인협회 회원 (문단정화위원회 위원).한국 문인협회 횡성지부 회장
장편소설  '아름다운 것들'  2006 (도서출판 한솜 미디어)
중편소설집  '물 속에 뜬 달'   2010 (월간문학 출판부)
소설집 '바우'  2014(도서출판 해드림)
Photo Essay 집  '섬강에서 그리움을 만나다'   2014(레몬기획) 
횡성군지’ '마을신앙'(2009, 민속원)'횡성의 구비문학''화성의 옛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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