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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내 너래울, ‘밭가래비’ 오순섭씨를 만나고 오다(1)특별기획 /‘소몰이 소리를 찾아서(9)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7.01.22|(116호)
오순섭씨

세상에나
소 나이
스물 하고도 일곱 살.

우리 나이로 치면
백세도 훨씬 지난 장수 노인네다 .
소 나이 스물일곱 살이면.

보통 스무 살이면 천수를 다 했다고들 하는 데..

***
얼마 전
한우 축제 때도 그 늙다리소는
섬강 둔치에서
등에 쟁기를 걸머지고 밭갈이를 거뜬히 했다.

오늘 아침나절 방문한 둔내 우용리 너래울 오순섭 씨 외양간에 그 소는 없었다.
안타깝게도.
***
“ 기력도 쇠하고 더 이상 새끼도 안 배고
  또
  제가 어떻게 처분할 길이 없어
  눈물을 머금고 한 달 전 팔았구먼요.
  참
 오랜 세월
한 식구처럼 함께 한 녀석이었는데..
그 녀석 팔려가던 날
제 안 식구는 차에 실려 가는 걸 도저히 못 보겠다며
방문 걸어 잠그고 밖에 발신양도 안 했어요.
저도 그 녀석 그렇게 황망히 보내고
며칠을 그 녀석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허방짚듯 허둥대며 며칠을 그렇게 보냈구먼요.”

횡성한우 축제장에서 등에 쟁기를 걸머지고 밭갈이를 했던 27살 한우와 오순섭씨. 소가 팔려가던 날 그의 아내는 차마 못보겠다며 방문을 걸어잠궜다.

“정말 우리에게는 보물 같은 존재였어요.
 그 녀석 우리집 있으면서  27 년 동안 무려 새끼를
 무려 스물 네 마리나 낳아주었구먼요.
 올 봄 까지.
 대단한거쥬.
 그뿐인가요?
 우리 밭은 물론 이곳 너래울 웬만한 밭은 모두 그 녀석 쟁기질로
 농사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구먼요.
 
 매년 ‘쑥-쑥 ’뽑아내는 송아지로
 우리 아이들 삼남 일 녀 학자금도 그녀석이 다 충당 했어요.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죠.
 ‘아낌없이 주는 낭구.’
 바로 그 거 였어요.
 
마지막에는 고기소로 팔려 보시하고 갔구요.“

***

그랬다.
적어도
그 분들에게 그 늙다리 소는.

알토란 이었고  화수분이었다.
그 늙다리 소가 있던 자리에는
지난 장 우시장에서 사 왔다는 코뚜레도 아직 안 한
낯선 소 한 마리가
휘번덕거리며 낯선 길손을 맞고 있었다.

***

“그 녀석 얼마나 영물이었는지
 날고 기는 이웃집 ‘밭가래비(소로 밭을 가는 사람)’들이 아무리
 수작을 걸어도 꿈적도 안 하는데
 제가 척하니 ‘이러-’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 나 밭을 갈군 했구먼요.
 참
 영리한 녀석이었는데..
 사람보다 더 말귀를 잘 알아들었어요. 그 녀석“

***

횡성 제일의 ‘밭가래비’ 오 순섭 씨.

1935 년  갑술생.
만으로 올해 여든 한 살.
적지 않은 연세다.
원래는 33년생인데 형 때문에 출생 신고 늦게 하는 바람에
나이가 두 살 줄었다고 한다.

손발이 갈퀴가 되도록 일을 하고 일을 했다. 60 여 년을 한결같이..

첩첩산중
평창 봉평 흥전리가 그의 태 버린 고향이다.

삼남매 중 막내.
봉평 까지는 통학거리가 안 돼 그는 늦은 나이인 열 살 되어서야
일본인이 세운 사립 소학교에 입학했고,
열 두 살 되던 해
그만 해방이 되는 바람에
학교는 시나브로 문을 닫았고
그의 정규 학력은 거기서 방점을 찍었다.
그의 나이 열두 살.

배움을 향한 그의 열망은 식을 줄 몰라 부모님 몰래
이웃 마을 서당을 찾아 명심보감을 일 년 만에 ‘뚝-닥’
허나 서당 공부도 거기서 끝이었다.
느닷없이 터진 6.25 전쟁으로.
참
배움에 대해서는 그는 박복하기 그지없었다.

배움에 대한 한(恨) 때문에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식들에게는 그런 배움에 대한 한(恨) 대물림 안 하겠다고
독한 결심을 하고 자식들을 가르쳤다.
그 덕분에 그의 슬하 3남 1녀는 모두 공부를 했다.

언감생심
땅 파 애들 대학 공부 시키는 게 말처럼 녹록한 게 아니었기에
그는
정말 손발이 갈퀴가 되도록 일을 하고 일을 했다.
60 여 년을 한결같이..

***

“평창 흥전리보다는 여기가 그래도 살 곳 이라 생각해서
 제 나이 열일곱 살 때 여기 ‘너래울’로 이사를 왔어요.
 이래 뵈도 여기가 제법 살 만 했어요.
 한학자였던 할아버지 영향도 컸지요.
 ‘주봉(너래울 뒷산)산하에 만인의 생활지지’ 라는 비결 하나 믿고
 이곳에 터를 잡았지요.
 그리고는 단 한 번도 이곳을 떠나지 않고 농사를 지었어요.
 살 같이 빠른 세월이라더니 손꼽아 헤어보니
 어느새 60 여 년이 ‘휙-’ 지나가 버렸네요. 선생님”

지난 10월 열린 제12회 횡성한우축제 밭갈이 시연장에서 오순섭씨와 정재영작가(가운데). 오른쪽은 기획특집 첫회에서 횡성의 마지막 소쟁기질꾼으로 소개된 강림면 안치옹씨


글/ 사진 : 정재영(소설가, 횡성문인협회 회장)
소설가. 횡성 갑천 출생
한국 문인협회 회원 (문단정화위원회 위원).한국 문인협회 횡성지부 회장
장편소설  '아름다운 것들'  2006 (도서출판 한솜 미디어)
중편소설집  '물 속에 뜬 달'   2010 (월간문학 출판부)
소설집 '바우'  2014(도서출판 해드림)
Photo Essay 집  '섬강에서 그리움을 만나다'   2014(레몬기획) 
횡성군지’ '마을신앙'(2009, 민속원)'횡성의 구비문학''화성의 옛터' 外. 

횡성희망신문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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